지난 6월29일부터 7월 3일까지 유기서원자 전체모임 중

광주를 방문하여 5.18 민주항쟁의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합생태실행팀의 이 엘리나 수녀의 나눔 입니다.

수녀님들, 안녕하세요.
지난주 유기서원자 전체모임 중 5.18 관련 장소들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날 느낀 것을 수녀님들과 나눌까 합니다.
저희가 방문한 곳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최후의 저항이 있었던 <전남도청>과 <분수대 광장>, 헬기 사격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일빌딩245>와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망월동 묘역>과 <국립5.18민주묘지>였습니다. 저희 모두 광주는 처음이었어요. 그만큼 그 엄청난 역사를 잘 알지 못했고, 해설사 데레사 님의 안내를 듣는 순간순간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잔악하고 극도로 비인간적이었던,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 당시 국가는 소중한 생명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기록물을 날조, 왜곡하는 작업까지 진행했다고 해요.
반면 그 어둔 역사 이면에는 참으로 인간다운 이들의 숭고한 정신과 그 정신 그대로를 실천에 옮긴 놀라운 이야기들도 숨어 있었어요. 누군가는 군부독재 정권의 치졸한 언론 검열에 맞서서 <투사회보>라는 자체 신문을 일일이 손으로 등사하여 진실을 알렸는가 하면, 누군가는 목숨을 내어놓고 거리로 뛰어나갔고, 어떤 이들은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총알이 날아드는 거리 한가운데로 택시를 몰고 들어갔으며, 또 다른 이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들을 지원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는 감시망을 뚫고 마침내 법정에 서서 자신들이 목격한 것들을 용감하게 증언했지요. 놀라운 것은, 그 혼란 속에서 사재기나 범죄, 수탈이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것들을 나누며 질서 있는 삶을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그 놀라운 평화가 판화로 표현된 것이: 모두 웃고 있음)

광주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뿐 아니라 가슴 아픈 상처를 끌어안은 채, 진실을 밝히고 용서와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으로 담담하고 인내롭게 나아가고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한강 작가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도 알려진 故 박용준 열사의 마지막 일기 한 자락.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또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주인공이 광주를 떠나는 길목에서 미칠 것 같은 고뇌 끝에 결국 택시 핸들을 돌리고 ‘광주’로 대변되는 ‘양심과 정의, 연대’의 자리로 서둘러 되돌아가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순간적으로 표현된 이 짧은 장면은 그날의 수많은 양심들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박용준 열사를 비롯한 당시 광주 시민들의 마음은, 이렇듯 치열한 고뇌와 자신을 거스른 용기의 결정체였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마음속에 질문이 던져집니다.
- ’지금을 살아가는 나는, 우리는 양심을 지키고 살아내고 있는가?’
- ‘내 안에, 우리 안에 진실을 흐리게 하는 왜곡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옳은 것을 바라고 담담하게 진리 편에 서는 것, 자매와 공동체,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고유한 방법으로 연대하는 것, 일상 안에서 크고 과장된 표현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 등을 성찰해 봅니다. 또한 5.18을 통해 우리 안에 생기는 분노는 양심과 평화, 연대의 정신을 일깨우는 불씨여야지, 결코 또 다른 폭력을 낳는 공격의 화살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빛과 실〉 19쪽
저는 왠지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어집니다. 이날 저희들 마음에 타올랐던 뜨거운 그 무엇, 무더위 속에서도 삼삼오오 현장을 찾은 여러 방문객들의 소중한 발걸음들을 떠올리면, 1980년 5월과 2026년 7월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짧아진 느낌이 들거든요. 5.18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양심을 되살리는 불씨로 살아있기도 하고요.

혹시 광주에 가보지 못한 수녀님들이 계시다면, 5.18 정신을 새기는 기회를 꼭 가져보시길 강력추천 드리면서 생각보다 길어진 나눔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