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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서울 이전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2]
(성 마리아 의원 개설, 구호 물자 배급)
(2)
흑석동 성 마리아 의원 개설
우리는 흑석동을 이전한 후 당시 사회가 필요로 하던 의료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본원 바로 옆의 2층 가옥 1동을 매입하여 수리를 시작하였고,
1955년 6월 14일 성 마리아 의원을 개원하였다.
의사 1명, 간호원 1명과 함께 오 다위 수녀가 책임자로서 약국일을 맡았다.
개원 첫 날에는 21명의 환자들이 왔고,
그 이후 계속 증가되어 하루 평균 70-80여명의 환자들이 찾아왔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50년사』 167쪽 참조]
[1955년 개원한 성 마리아 의원은 1962년 증축 후 성모병원으로 개칭하였다]
[성모병원에서 약을 조제하고 있는 수녀, 1970년대]
흑석동에서 수녀들은 본원을 정릉으로 이전(1964년 9월)하기 전까지
전쟁 이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호물자 배급 활동을 꾸준히 하였다.
[흑석동 수녀원 앞은 구호품 배급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쌓여있는 구호품을 정리하고 나누는 수녀들과 대문 밖에서 구호물자를 받으려는 사람들]
[수녀들의 구호품 나눔은 본원을 정릉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1963년 1월 18일 일기 중]
18일
원장 수녀님, 아녜 수녀, 벨베뚜아 수녀 외출하시고 저녁에 돌아오시다. 밀가루, 우유 배급 줄 것 들어오다. 후밀리따스 수녀 계산동 다니러 가다.
[1963년 1월 24일 일기 중]
24일
본당 밀가루 배급 천 명 주는데 수녀들 총 동원. 밀가루 배급주느라고 분을 발라 보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구정 설 때라 기뻐들 한다.
수녀들은 정릉으로 본원을 이전한 후에도 구호물자를 담았던 나무 상자에 한지를 발라
침구류, 의류, 잡화류 등을 정리하는 좋은 장으로 사용하였고,
그 일부는 2025년인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해외에서 흑석동 수녀원으로 구호품을 넣어 보내오던 궤짝(나무 상자)]
[꼬질꼬질, 반질반질한 손 때 묻은 구호품 상자들에는 한국 시련의 역사가 담겨 있고, 스쳐간 선배 수녀들의 손길도 묻어 있다.
이 구호품 상자들은 수녀원의 소도구들을 보관하는 튼튼하고도 요긴한 장이 되었다]
[70여년이 지난 2025년 현재까지도 미술용품들을 넣어두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한지를 바른 구호품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