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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칸가리(Cangari) & 비야 엘 살바도르(Villa El Salvadore)

 

| 페루 비야 엘 살바도르 지역

 

페루의 면적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국토의 59%가 아마존 열대우림입니다. 4천여년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페루는 15세기에 안데스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잉카문명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러한 페루의 수도 리마 남쪽에 위치한 비야 엘살바도르는 1970년경 이민자 가정의 긴급 주택 요구로 이주해 오기 시작, 1983년에 정식 설립되었으며, 광활한 모래밭에서 주민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전기, 수도 및 하수설비를 마련하여 도시개발이 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 최 아우구스타 수녀의 선교이야기 중에서

   페루에서 샘물모임을

    

우리가 이곳 페루에 진출한 지도 내년이면 25주년을 맞게 된다. 그동안 많은 일과 변화가 있었다. 리마에서 깐가리에서 그리고 지금은 깐또 그란데에도 사도직 재개를 하여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어린이들, 청소년들, 노인들과 주님의 말씀을 나누며 함께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특별히 함께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샘물모임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젊은이들과 성소자 모임을 가지며 성소 발굴을 위해 노력은 했지만, 이번처럼 공동체가 합심해 함께하기는 처음이다. 나 자신도 관심 없이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내가 맡은 선교의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뭔가 꼭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오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 내심 일어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젊은이들을 수녀원에 초대해 정규적인 모임을 하고 있다. 적게는 4명 많게는 7~8명이 함께한다. 주일 복음을 중심으로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의 삶을 나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꾸준하게 참석하는 그들을 보며, 말씀을 나눌 때 소중하게 삶을 가꿔가는 모습을 볼 때, 하느님의 말씀이 이들 안에서 역사하심을 느끼며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함께 소풍도, 성지 순례도 하며, 정성껏 만든 한국 음식, 그들이 만든 페루 음식도 나누며 우정을 키워간다.

4월부터 우리는 이 모임을 우리 수도회의 성소자 모임 이름 그대로 샘물모임이라 부르기로 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명의 물처럼 목마른 이들, 목마른 생명을 살게 하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샘물의 뜻을 설명하니 모두 기뻐했다. 조심스럽게 한국어로 우리 수도회의 회가(會歌)도 가르치니 힘차게 불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저만치 멀게만 느껴지던 성소 발굴이 이미 우리 가까이에서 싹트고 있는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아직은 성소로 이어진 젊은이는 없지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가능하다는 확신이 왔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봄비를 기다리듯, 그들 안에 뿌려진 주님 생명의 말씀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물을 대고 거름을 주면서 인내심을 갖고 땀을 흘려 보려고 한다. 또한 더 많은 젊은이를 샘물의 원천’(요한 19,34: 묵시 21,6: 22,1~2)이신 주님께로 이끌어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또 다른 작은 생명의 물이 되어 이 세상을 촉촉이 적셔주는 샘물이 되게 하고 싶다.

 

| 신영애 스페란자 수녀 선교 이야기 중에서    

수덕하라 부르신 곳

    

페루 도시인 리마에 비해 이곳 깐가리 깡촌은 아주 조용한 곳이다. 수도자가 수덕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할까? 아침이면 닭이 잠을 깨우고 새소리와 도랑물 소리는 분심 어린 마음을 맑게 해 준다. 물론 길에서 만나는 개들의 짖어대는 소리는 때때로 심장을 뛰게 만들지만 민첩한 행동을 하게끔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모기떼의 대환영 인사는 선교 연륜에서 오는 면역력 순이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간다.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어찌하랴. 양파망으로도 모기약으로도 이길 수 없는 무력함을. 석 달 정도 긁다 보면 지나간다. 타고난 나의 약함도 삶의 시행착오를 통해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강인해지지 않는가?

 

수녀원 마당에 잡풀을 뽑고 또 뽑을 때면 끊임없이 올라오는 칠죄종을 본다. 어쩜 그리도 자연과 인간은 닮았을까? 먹을 열매들과 채소들에 물을 잘 주면 그들도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풍부히 맺어준다. 받았으면 갚을 줄 아는 것이, 매정한 인간보다 낫다. 농업이 주업인 이 마을 사람들은 자연과 가까워서 그런지 아주 순수하다. 리마에서는 집안과 집 밖 모두 자물쇠를 채우고, 걸고, 잠그고,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게 꽉꽉 막혀 사는데 이곳은 집과 집 사이든 문과 문 사이든 모두 열어놓고 산다. 집 안을 들려보면 가축과 동물도 함께 먹고 자는 식구이다. 우리처럼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엄격히 두지 않는다. 물론 침대와 음식을 같이 나누지는 않지만, 거주 공간은 차별을 두지 않는다. 참으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물질문명 속에서 도시의 삶에 익숙하여 천연의 삶이 무료할 줄만 알았는데 나름 배울 것도 많고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빨리 익숙해지는 것을 보니 분명 인간도 자연임이 틀림없다.

 

이곳에 산 지 13개월 접어든다. 수많은 집을 방문하고 다섯 곳의 공소와 동네를 다녔다. 지금도 손길이 잘 닿지 않는 먼 곳은 늘 마음이 쓰인다. 방문하는 곳 어디나 서로 몰라도 예수님 맞이하듯 이 수도자를 기쁘게 받아주는 이들이 참으로 감사하다. 오로지 성경책 하나 들고 나와 그들과 나누는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서로에게 예수님이 된다. 어눌한 스페인 어도 기적이 일어난다. 복음을 나누는 이들의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굳었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언어 표현이 부족한 이 수녀를 통해 오히려 그들이 더욱 힘주어 이야기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사도 바오로가 그랬던가, 자신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이 드러남이라고(참조 1코린 2,1~5). 발품을 팔고 돌아오는 길은 어깨가 무겁다. 주님 말씀에 채소 한가득 안겨주기 때문이다. 리마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지만, 하루 벌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사람이 많다. 이곳은 누구도 먹지 못해 굶주리는 이들이 없다. 온 사방이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매일의 땀과 노동이 양식을 위한 희생이고 그 희생이 물질문명을 불허한다. 굶주림이란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하느님 창조 사업 가르침 안에는 없는 목록이다. 그래서 이곳은 모두가 평등하게 산다. 사실 더 가지고 덜 가지고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굳이 차별을 두자면 더 배우고 덜 배우는 것이 이들의 희생의 이유라고 할까? 그래서 이곳에서 두 수녀는 열심히 가르친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리고 신앙 교육을. 아마도 주님께서 이곳으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