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설립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설립자
목 요안 신부는 1921년 1월 31일 미국 최초의 가톨릭 외방 전교회 메리놀회에 입회하였고, 1923년 11월 26일 선교사로서 평안북도 의주에 도착한 그는 1924년 8월 평안남도 영유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기 전 박우철 영유 본당 신부의 권유로 2주간 동안 11개의 공소를 대략 250리를 걸어서 방문하였다. 두 번째 방문은 같은 해 12월 영하 20-25도의 추운 겨울 13일 동안 16개의 공소를 약 380리를 걸어서 신자들과 친교의 시간을 갖고, 선교지의 상황을 파악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온 열정을 쏟았다. 그는 살을 에이는 바람이 몰아치는 날 신자 한 가구만 살고 있는 윤공리에 가기 위해 35리를 걸었다.
그는 1930년 4월 1일 제2대 평양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목 요안 교구장은 수녀들이 학교, 본당, 진료소, 사회사업 단체 등에서 봉사를 통해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1932년 6월 27일 평양 교구에 첫 방인 수도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한국 순교자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어서 순교자 축일이 되면 성당에서 밤 기도와 제등행렬, 순교 성극, 강연회 등으로 신자들의 신앙심을 건고하게 하였다. 밤에 거행된 제등행렬에는 500명, 때에 따라 2,000명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목 요안 교구장은 신사참배 문제로 일본 정부와 일본 주재 대주교와의 마찰로 1936년 7월 평양교구장직을 사임하였다. 그 후 1937년 4월부터 일본 교토 가와라마찌 중앙 성당에서 혼자 80,000명의 한인 신자들을 돌보고, 특히 빈민들과 환자들을 방문하여 도와주었다. 당시 일본은 외국인을 모두 간첩으로 몰아 외국인 배척 운동이 일어났던 때라 일본 지배 아래 있던 한국의 태극기를 제대보 아래 깔고 미사 드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였으나 그는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제대보 아래 태극기를 깔고 미사를 드렸다. 목 요안 몬시뇰은 주님과 같이 수난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리스도처럼 살다간 기도의 반려자이며 사랑의 설립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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