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설립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설립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제2대 평양 지목구 교구장 목 요안 에드워드 모리스 몬시뇰(John E. Morris, 한국명 목이세 睦怡世, 1889-1987)에 의해 1932년 6월 27일 설립되었다. 목 요안 모리스 몬시뇰은 에드워드 B. 모리스 와 요안나 헤네베리 부부의 3남 1녀 중 셋째로, 미국 메사추세츠 주 팔리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14년 6월 13일 팔리버 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고, 약 7년간 팔리버의 성 요셉 성당의 보좌 신부로 사목하였다.

 

목 요안 신부는 1921년 1월 31일 미국 최초의 가톨릭 외방 전교회 메리놀회에 입회하였고, 1923년 11월 26일 선교사로서 평안북도 의주에 도착한 그는 1924년 8월 평안남도 영유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기 전 박우철 영유 본당 신부의 권유로 2주간 동안 11개의 공소를 대략 250리를 걸어서 방문하였다. 두 번째 방문은 같은 해 12월 영하 20-25도의 추운 겨울 13일 동안 16개의 공소를 약 380리를 걸어서 신자들과 친교의 시간을 갖고, 선교지의 상황을 파악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온 열정을 쏟았다.

그는 살을 에이는 바람이 몰아치는 날 신자 한 가구만 살고 있는 윤공리에 가기 위해 35리를 걸었다.

 

1924 뉴욕 메리놀 환송 주일학교(신의주) 한국아이들과 함께

 

 

그는 1930년 4월 1일 제2대 평양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목 요안 교구장은 수녀들이 학교, 본당, 진료소, 사회사업 단체 등에서 봉사를 통해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1932년 6월 27일 평양 교구에 첫 방인 수도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한국 순교자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어서 순교자 축일이 되면 성당에서 밤 기도와 제등행렬, 순교 성극, 강연회 등으로 신자들의 신앙심을 건고하게 하였다. 밤에 거행된 제등행렬에는 500명, 때에 따라 2,000명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평양모원     전례행렬 설립자와 함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가톨릭 운동이다. 방인 사제 양성에 진력하였고, 평신도 지도자 양성을 하며 월간지 「가톨릭 조선」을 발행하여 문서 선교에 매진하고, 문맹퇴치를 위해 시골 본당까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야간 학교     운영하며 교리강습과 평신도 묵상회와 피정을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일본의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 민족이 자립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웠다. 또한 고아원, 요양소, 직업학교, 시약소 등을 활성화 시켰다.

 

 

 

목 요안 교구장은 신사참배 문제로 일본 정부와 일본 주재 대주교와의 마찰로 1936년 7월 평양교구장직을 사임하였다. 그 후 1937년 4월부터 일본 교토 가와라마찌 중앙 성당에서 혼자 80,000명의 한인 신자들을 돌보고,     특히 빈민들과 환자들을 방문하여 도와주었다. 당시 일본은 외국인을 모두 간첩으로 몰아 외국인 배척 운동이 일어났던 때라 일본 지배 아래 있던 한국의 태극기를 제대보 아래 깔고 미사 드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였으나   그는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제대보 아래 태극기를 깔고 미사를 드렸다. 목 요안 몬시뇰은 주님과 같이 수난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리스도처럼 살다간 기도의 반려자이며 사랑의 설립자였다.

 

미국 뉴욕 메리놀 본부 1973 신부님을 방문한 수녀등

미국 메리놀, 목신부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