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한처음과 마지막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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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한처음과 마지막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이사 52,7-10; 히브 1,1-6; 요한 1,1-18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2018.12.25.; 이기우 신부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오신 말씀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펼쳐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의 죄가 인간에게는 고통이기에 하느님께서는 고통 대신에 행복을 주시고자 하셨고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하느님의 자리는 한처음과는 달리 이 세상을 한껏 품을 수 있는 또 다른 나라였습니다. 그토록 인류를 옭죄게 했던 죄가 없어진 새로운 세상이 온 것입니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하느님이 되셨어도, 아니 하느님이 되셨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오시기 전과 오신 후는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그분의 오심은 새로운 시대의 기원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께서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분임을 증언합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입니다. 우주에 관한 천문 지식을 얻어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 규모와 역사에 있어서 놀라게 됩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지구가 속한 태양계도 우주의 중심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의 한 변방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 주위를 도는 태양계류의 시스템이 6천억 개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더 놀라게 되는 것은 그 많은 별들 가운데 오직 지구에만이 생명체가 살고 인간이 살도록 조성하셨다는 것, 그 지구와 인간을 위해서 저 수많은 별들을 만드시고 은하계도 태양계도 만드셨다는, 창조주 하느님의 엄청난 낭비처럼 보이는 그러나 거룩한 투자입니다. 그토록 지구 별과 인간 생명이 소중하고 귀합니다. 

 

그 소중함과 귀함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몸소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오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입니다. 이래서 우주에 투자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낭비에 담긴 하느님의 섭리와 이스라엘의 역사적 과오를 풀기 위한 우리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 세상의 셈법으로는 이천 년 하고도 십팔 년이나 되었어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안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말씀은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그 오랜 세월 전에 생겨났어도, 지구 역시 상상할 수도 없는 먼 과거에 생겨났어도, 말씀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지금은 창세기의 시대입니다. 인류 역사가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해도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한 현대는 아직 창세기입니다. 

 

생명이 생명을 만나 새 생명을 낳고, 새 생명이 말씀을 만나 참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한, 우리는 축복받은 에덴 동산에 사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듯이, 가난한 이들이 기쁜 소식을 듣는  새 에덴 동산은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우리의 꿈입니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듯이, 잡혀간 이들이 풀려나고 억눌린 이들이 해방되는 새 에덴 동산은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우리의 과제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빛이 새롭고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지구라는 에덴 동산에도 그 한가운데에는 나무 열매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새 아담과 하와는 그 나무 열매 대신에 말씀을 먹습니다. 한때는 세상에 오신 말씀을 알아보지 못하고 맞아들이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세상에 오신 말씀으로 빛을 삼아 아직 남아있는 어둠을 비추입니다. 

 

말씀의 빛으로 어둠이 사라진 새로운 세상에서는 그 말씀으로 새로이 창조되고 있는 피조물들을 한도 끝도 없이 마주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의 과제도 말씀이 창조하실 또 다른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과업들도 말씀이 창조하실 또 다른 피조물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인생이 말씀이 빚어내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듯 우리네 삶을 통해서도 세상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과제도 만만치 않고 사회적 과업들도 녹록치 않지만, 이제까지 이끌어주셨듯이 말씀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노래했습니다.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 이들의 손과 입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예언자가 내다본 그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사도가 말씀의 도구입니다. 말씀으로 완성하실 그날을 앞당기려 애를 쓰는 사도가 말씀의 종입니다. 저마다 자기 영혼 안에 한 치라도 더 말씀을 담으려고 하루하루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 성탄을 맞이하는 천사들입니다. 

 

강생과 부활로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심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를 통하여 아직도 믿지 못하고 불신의 어둠 속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강생과 부활의 말씀이 빛으로 비추이기를 기도합니다. 한 조각처럼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한 세상처럼 커 보일 수도 있는 믿음이 하느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온 우주와 그리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창조의 말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말, 우리의 글, 우리의 손짓, 우리의 발길, 우리의 몸짓 모두가 말씀으로 창조되는 성탄 대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아담과 하와처럼 우리 사회라는 에덴 동산을 돌보고, 마지막 아담과 하와처럼 우리 역사라는 에덴 동산을 가꿀 수 있기를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여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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