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라테란의 추억과 바티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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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란의 추억과 바티칸의 교훈

 

에제 47,1-2.8-9.12; 1코린 3,9ㄴ-11.16-17; 요한 2,13-22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18.11.9; 이기우 신부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라테란 대성전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지어서 교회에 봉헌함으로써,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바티칸 언덕에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라테란 대성당의 황금기는 다섯 차례나 공의회가 열렸던 11세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타락과 분열에 휩싸였고, 프란치스코가 무너져가는 라테란 성당의 꿈을 꾸고나서 교회를 재건하라는 소명을 받은 때가 12세기였습니다. 14세기에 프랑스 출신 교황이 선출되자 프랑스 왕이 압력을 가하여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간 후 라테란 대성당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6세기 초에 아비뇽에서 로마로 돌아온 교황들은 실추된 교황청의 권위를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화재까지 일어나서 더 초라해지고 낡아버린 라테란 대성당을 허무는 대신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미술가를 총동원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성당을 바티칸 언덕에 있었던 베드로 성인의 무덤 위에 짓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면죄부 판매라는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여론까지 묵살하는 바람에 가톨릭 교회는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번영해 가는 가톨릭 교회의 상징이며 긍지를 대변하는 듯 화려하고 성대하지만 역사적 분열의 상처를 간직한 베드로 대성당에 비해 초라하고 왜소하며 쇠락한 라테란 대성당이 간직한 역사의 추억은 소박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라는 명예는 아직까지도 라테란의 몫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이천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가톨릭 교회에는 세상 역사의 맑고 흐린 물을 모두 받아들여온 추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강에서 흘러들어온 맑고 탁한 물들이 모두 바다로 흘러들어와 정화되듯이, 지금은 쇠락했지만 천 년 동안 선교활동을 통해서 유럽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는 성당들의 어머니 역할을 한 라테란 대성당의 추억이나, 교회 분열의 상처를 간직했지만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 성당들의 중심이 되고 있는 화려한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 모두가 인류에게 생명의 기운을 전달하여 흘러온 흔적입니다. 

우리 나라를 살펴보면, 서울이나 지방이나, 본당이나 순례지나 성당 건물을 짓거나 유지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동산 가격이나 건축비가 엄청나게 올라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성당에서 선포되어야 할 생명의 복음이 위주가 아니라 건물을 세우고 관리하는 일 또는 그러기 위해 모금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명동 성당의 개발계획이 완료됨에 따라 유휴지도 개발하여 주차공간도 넉넉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억눌린 이들이 찾아와 호소하던 언덕광장 자리에도 호텔 아케이드를 방불케 하는 상업시설이 들어차니까 귀찮은 시위집회도 사라지고 명동 성당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나 관리 책임을 맡은 이들의 불편도 줄어든 반면에, 명동 성당마저 상업화되고 말았다는 소리 없는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시위와 집회는 시청앞 대한문 광장이나 광화문 앞 광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재작년과 작년 열 일곱 차례나 수백 만의 인파가 모여서 불의한 권력마저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촛불 집회에서는 매번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툭 하면 명동 성당 들머리에서 시위 집회가 열리던 시절에도 그렇게 자발적으로 시위와 집회의 자유뿐만 아니라 예의까지 갖출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되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는 지나가버린 민주화의 성지라던 명성을 옛 추억으로만 삼아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식을 주관하는 사제들이 그 예식이 이루어지는 성전 또는 성당이라는 건물 관리라는 책임의식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생명력이 담긴 복음 선포를 더 중시하는 소명의식을 갖기에는, 예수님 당시에나 중세 시대에나 오늘날에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으신 예루살렘 성전 정화사건의 이야기는 라테란의 추억과 바티칸의 교훈을 더욱 되세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며, 하느님의 생명의 기운을 선포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건물로 보는가, 아니면 사람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복음선포의 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의 궁전이며 신앙의 공동체인 신자들 자신입니다. 보이는 교회로서의 성전 또는 성당은 살아있는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인 자신이 교회임을 거듭 거듭 상기시켜주는 한에서 거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라테란 대성전도, 베드로 대성전도, 오늘날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있는 성당도 그렇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