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隱花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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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隱花를 아십니까? 

  • 무명 순교자들 이야기

 

지혜 2,12.17-20; 야고 3,16-4,3; 마르 9,30-37

연중 제25주일; 2018.9.23.; 이기우 신부

 

  1. 연중 제25주일로서 순교자 성월의 네 번째 주일인 오늘은 무명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다룬 소설 ‘은화’를 중심으로 해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 반만년의 역사 안에서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피지배계층이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무력이 아닌 평화적 수단을 가지고 역사를 앞당긴 사례는 천주교가 유일무이합니다. 박해시기 천주교회는 전국에 흩어진 교우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대부분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와 예수를 믿는 천주교 신자로서 이웃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던 착한 백성이었으나 단지 나라에서 금지한 종교를 신봉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신봉하는 천주교의 교리가 진리라는 신앙을 버리지 않았기에 끝내 선교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에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이라는 선진적 사회질서를 이 땅의 역사에서 구현해 낸 선구자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악인들이 놓은 모욕과 고통의 덫으로 시험받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강요당했으나 끝내 승리한 역사의 의인들이었습니다. 또한 제2독서인야고보서에 나오는 대로, 위에서 오는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이고 의로움의 열매로 평화를 심은 사람들입니다. 그런가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본보기로 삼으신 대로, 신분질서를 거슬러 그 당시 사회에서 낮추어 보고 무시하는 이들을 교우로 받아들여 형제애를 실천한 제자들이었습니다. 

 

2. ‘은화’는 시기적으로는 병인박해, 지역적으로는 충청도를 배경으로 윤의병 신부가 교우촌에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천주교 신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천주교 군난소설입니다. 박해가 끝나고 선교와 신앙의 자유를 얻은 시기에 태어나 순교자들의 행적과 신앙을 전하려고 그는 이 소설을 경향잡지에 11년 동안 연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순교자 집안 출신으로서 순교자 신심이 두터웠던 그는 순교자를 현양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군난소설 ‘은화’는 병인년 군난의 분위기와 교중 풍속, 열심한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주인공인 서금순 데레사와 이성칠 필립보를 중심으로 당시 교우촌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숨은 꽃’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은화라는 제목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서 살아야 했던 시절에, 영웅적으로 치명한 성인성녀들이 아니라 무명으로 남은 천주교인들을 등장인물로 한 이 소설은 역사가 알려주지 않는 삶의 진실을 소설의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3. 소설 ‘은화’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이성칠 필립보의 가족은 군난을 만나 당숙어른이 순교하자, 일가의 눈을 피하여 진천 용덕산 아래 정삼이골에 들어와 오늘까지 아무도 모르게 삼십 여녕을 살고 있었습니다. 필립보의 부모인, 70대 노부부는 더위에 밭을 매다 말고 무릎을 꿇고 앉아 삼종기도를 올렸습니다. 산골에 수십 년을 숨어 살면서도 마음 놓고 소리 내어 기도를 올려본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지금 조선에 주교 신부들이 다시 나오셨는지 알아볼 수도 없고, 교중 소식 하나 들을 수 없는 이 어두운 산속에서 성사 한번 받지 못하고 죽을 것이 큰 걱정이었습니다. 외인 며느리를 얻고 천주교 교리 하나 가르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우리가 신자인 것을 눈치채일까 하여 속이고 지내니,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섣불리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터이니 하며 속만 끓이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데레사는 혼자 친정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 물려갔다가, 도망쳐서 진천 삼박골 이 진사 집에 이르러 기절하여 쓰러졌습니다. 공소회장이었던 이 진사는 마침 베르뇌 주교를 집에다 모시고 공소예절을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집 앞에 쓰러진 데레사를 발견하고 옷깃 속에서 발견된 성모패로 교우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교우는 다 죽었다더니, 일곱 살에 첫 고해하고 아홉 살에 군난을 만나 이리저리 쫓기다가 깊은 산중에 파묻혔네.” 하며 깨어난 서금순 데레사는 서럽게 사설을 읊어대며 처량하게 울었습니다. 

한편 이성칠 필립보는 자기 부친의 분부로 삼박골 이 진사를 찾아가서 서울에서 낙향했으니 요즘 군난 형세를 묻고자 탐문하던 중, 서로가 친척관계가 되며 서로 교우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뜻밖에 호환을 만난 아내 데레사를 만나게 되고, 서로가 교우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성칠과 서금순은 십여 년간 부부로 살면서도 서로가 교우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후 필립보와 데레사의 나이 드신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던 중 포졸의 급습을 받고 교우들이 붙잡혀 진천 읍내 본관으로 호송되어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에는 청주 감영으로 끌려가 옥에 갇혔습니다. 배교를 강요하는 고문을 받고 고생하다가 감방에 있던 화적 두목이 파옥하여 도주하는 틈에 필립보와 데레사도 탈옥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상도 문경 쌍룡이 교우촌에서 옹기장사를 하며, 아들 바오로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교우촌이라고 하여 안심하고 살 곳은 아니었습니다. 필립보가 집을 떠난 사이, 마을에 온 방물장수가 데레사를 알아보자 불안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방물장수가 밀고를 하여 포졸을 데리고 오자 데레사는 아들 바오로를 업고 급히 교우촌을 나와 산 속을 헤매었습니다. 

당시 조정을 수렴첨정하던 대원군은 을축년에 지인 이준호 요한을 시골로 떠나보내고 천주교인과 상종하지 않은 채 안동 김씨의 세력을 의식하여 자중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인년 정월에 러시아 군한 한 척이 원산항에 나타나서 조선에 통상을 청하니, 대원군은 대신들을 불러 논의하던 차에 몇몇 교우들이 프랑스, 영국과 동맹을 맺어서 러시아를 물리치는 데에 서양 주교와 신부들을 불러서 쓰게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홍봉주는 이러한 내용을 적어서 대원군의 사돈 되는 조기진을 거쳐서 상소를 올리고, 교우였던 승지 남종삼에게도 이러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원군은 남종삼에게 주교를 만나겠다고 전하고, 남종삼은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를 모시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마음이 바뀐 대원군은 주교의 상경을 알리러 온 남종삼을 물리쳤습니다. 왜냐하면 대원군이 양인을 만나려고 사람을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유생들과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를 하는 바람에 원산에 들어왔던 러시아 군함도 슬그머니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반대파들은 북경에 다녀온 사신들로부터 아편전쟁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고는, 중국 천자가 양국 놈들을 모조리 학살했다는 거짓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렇게 되자 대원군은 유생들과 대신들을 적으로 삼을 필요도 없고, 양인들과 화친할 필요는 물론 서학을 장려할 필요도 못 느껴서, 양인들과 서학꾼들을 처치하라는 분부를 내렸습니다. 대신들에게 양인들과 친하다는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부러 강경한 조치를 천주교인들에게 내린 것입니다. 

한편 당시 조선에서 선교하던 주교와 신부는 12명이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신자 이선이를 앞세워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신부, 볼리외 신부, 도리 신부 등을 체포하여 새남터에서 처형하였습니다. 프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도 배론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처형하였습니다. 내포로 내려와 거더리 공소에서 장 베르뇌 주교의 체포와 치명 사실을 알게 된 다블뤼 주교도 거더리에서 체포되고, 다블뤼 주교의 편지를 받은 위엥 신부와 오메트르 신부도 자진해서 거더리로 와서 자수하였습니다. 복사 황석두 루카는 끝까지 다블뤼 주교를 따랐고, 이 네 사람은 보령 수영에서 문초를 받은 후 갈매못에서 성금요일에 처형당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포졸의 급습으로 헤어진 필립보와 데레사 부부는 조령 암자에서 극적으로 해후한 후, 공주 둠벙골에 정착하여 나무와 길쌈, 품팔이로 연명하다가 옹기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생활이 어느 정도 펴질 무렵, 양인들을 체포하려고 한양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부부는 헤어져 각각 떠돌게 되었습니다. 필립보는 이리저리 떠돌다가 금강 곰나루에 도착하여 공주감영의 포졸들의 눈에 들어 관노 비슷하게 지내면서 옥에 끌려온 교우들을 몰래 도와주었습니다. 데레사는 정처 없이 산길을 헤매다가 자식이 없는 최 진사 댁에 집안일을 도와주며 의탁하던 중 신자라는 사실이 탄로날 것을 예감하고 최 진사 부부에게 아들 바오로를 맡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공주감영에서는 잡혀온 천주학꾼들이 배교를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줄톱질, 가새주리, 학춤, 단근질을 당하면서도 교우들은 배교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며, 삶의 터전을 잃고 포졸들에게 쫓기면서도 “천주께서 안배하실 것”이라며 온전히 믿음으로 의탁하였습니다. 살아남은 교우들은 “앞의 사람이 죽어 넘어지면 그 다음 사람이 대어서고, 그 사람이 죽으면 또 그 다음 사람이 대어서는 것이 필연한 순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필립보가 우연히 공주감영 뜰에 버려진 아들 바오로를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지 못한 채 미완으로 끝이 납니다. 

저자 윤의병 신부는 1935년 이후 황해도 은율에서 사목하면서 기해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 소설을 연재함으로써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일제강점기에서 핍박당하는 교우들에게 신앙심을 격려하고자 하였으나, 1950년 전쟁 직전에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당시 윤의병 신부는 60세의 고령으로서 신변이 위험하니 월남하라고 교우들이 권유했으나 순교 정신으로 교우들을 지키고자 남았다가 희생되었습니다. 은화처럼 숨어 살면서 백 년 전의 군난을 겪어야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알리려던 윤 신부를 비롯하여 해방 전 북녘땅에도 치명해야 했던 은화들은 많이 있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