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에파타!” : 듣기와 말하기, 쓰기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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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파타!” : 듣기와 말하기, 쓰기와 읽기

  • 순교자 성월 강론 2: 신앙 선조들의 글과 말

 

이사 35,4-7ㄴ; 야고 2,1-5; 마르 7,31-37

연중 제23주일; 2018.9.9.; 이기우 신부

 

  1. 사람의 생명 활동이 동식물과 같은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점은 의사소통 활동이 압도적으로 활발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말과 글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나 후대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영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도 의사소통을 하는 유일한 생명체입니다. 그런데 말과 글은 듣기와 말하기, 쓰기와 읽기로 나타나고 이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은 듣기입니다. 사람은 들어야 말할 수 있고, 말을 하면서도 자기 말을 자기 귀로 들어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입에서 나오자마자 공중에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이 말을 적어서 남기는 수단을 글이라 합니다. 다른 이의 글을 읽을 수 있어야 자기 글을 쓸 수 있는 이치는 들어야 말할 수 있는 이치와 상통합니다. 일방적인 말이나 글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없으므로 말은 들려주기 위해서 하고, 글은 읽혀지기 위해서 씁니다. 그리고 의사소통으로 관계가 맺어집니다. 

또한 말과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생각이 말이나 글로 언어화되면 더 깊은 생각과 더 짜임새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말과 글을 합한 언어는 사고의 집이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관찰해 보면, 말과 글을 발달시킬 줄 알았던 집단은 문명을 발달시켰고, 그렇지 못한 문명은 사라졌습니다. 개인의 발달 단계에서도 말과 글을 배워 알아야 문화적인 생활양식이 가능해지고, 언어가 문화로까지 승화되어야 비로소 의사소통이 원만해집니다. 말할 줄 모르는 사람, 글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된 의사소통을 이끌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들을 줄 아는 사람,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집단이나 개인이나 인간 상호간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의 이러한 이치는 영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 이루는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똑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는 집단이나 개인은 하느님께는 물론 동료와 이웃에 대해서도 자발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된 글을 읽을 줄 알았던 집단이나 개인이 동료와 이웃에 대해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구원입니다. 

 

2.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귀먹게 되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그의 혀에 침바른 손을 대시고는 “열려라!” 하는 말씀으로 그의 귀를 열어주시고 그의 혀를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치유와 구마 기적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쳐주신 이 기적 사건 역시 당사자를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했던 자비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가 되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았던 병자들이나 마귀 들린 사람들처럼 귀먹고 말 더듬는 그 사람도 자기의 탓이나 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이스라엘의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억압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런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병들면 사람도 병듭니다.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이 의사소통이 막히거나 억압받으면 육체적으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장애에 걸릴 수 있고 정신적으로도 다른 사람을 이끌기는커녕 소외된 처지에서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미 이사야가 이런 상황을 내다보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눈먼 이들은 눈을 뜨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며,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릴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제2독서는 사도 야고보가 귀 열리고 혀가 풀린, 그래서 구원받은 이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이 동료 내지 이웃과는 물론 하느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처방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하되,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믿음을 전해야 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구원을 위한 의사소통의 지혜입니다. 

 

3.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경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실로 오묘한 것이었습니다. 그 경위의 배경으로서는 이미 중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던 선교사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양보다 높은 문화적 교양을 갖추고 있었던 중국의 선비들을 겨냥해서 한역서학서들을 펴냈습니다. 이 책들은 서너달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조선에 들어왔는데, 그 종류가 350여 종에 이릅니다. 조선에 복음이 들어올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으로서는 실학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던 선비들이 있었고 그들이 한역서학서들을 접하면서 조선의 선비 사회에 이 책들을 필사해서 유통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350여 종의 한역서학서들 가운데에서 특히 필사작업을 통해서 유통된 주요 서적들은 120여 종입니다. 

당시 조선 사회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던 성리학적 가치질서와 부딪치는 바람에 박해가 불어닥치기는 했지만, 애초 서적으로 서학 즉 천주교의 진리를 접한 선비들의 지향은 성리학적 유학이 아니라 원시 유학으로 돌아가자는, 그래서 형식은 보유론적 접근이었지만 내용은 유학의 이념을 천주교의 진리로 완성하려는 차원높은 시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선비들은 자신들이 유학에서 배운 중요한 가치나 방식을 천주교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했고 어떤 면에서는 더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유학을 배우던 선비들이 그러했듯이 천주교의 진리에 접한 선비들이 책을 읽는 독서방식은 한 두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뜻이 머리에 잡히고 마음에 자리잡을 때까지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산 정약용 사도 요한 같은 선비는 어려서부터 읽기로 작정한 책은 오천 번, 만 번을 읽어서 거의 외우다시피 해야 겨우 한 권을 떼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광암 이벽 세자 요한 같은 선비가 지은 천주공경가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같은 선비가 지은 주교요지 속에는 자신들이 수백, 수천 번 읽고 깨우친 천주교의 진리가 그대로 녹아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고 종이가 귀했던 그 당시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진리에 목말라 하다가 천주교에서 찾은 그 선비들은 그 서적들은 손수 하나하나 필사해서 다른 선비들에게 돌려 읽게 했습니다. 그러니 이미 수없이 읽어서 이해하게 된 천주교의 진리가 필사작업을 하는 동안에 더욱 굳은 깨달음으로 마음에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문을 배우지 못한 무식한 교우들을 위해서는 한글로 된 4 4조의 천주가사로 천주교의 진리를 전달했기 때문에, 비록 천민 출신이나 어린 아이들이라도 천주교의 진리에 대해서는 어느 관헌이 모진 고문을 가하며 물어도 척척박사처럼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진리를 실천하려고 재산과 지위와 명예를 다 버리고 심산유곡에 숨어 들어가 세운 교우촌 생활이 어렵다 해도, 또 그러다가 발각되어 배교 위협을 받게 되어 치명하게 되었다 해도, 교우촌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교를 불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선비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아 신앙을 받아들인 신자들이 천주교 교리에 담긴 진리를 배우고 깨우친 노력 덕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이 땅에 복음이 뿌리내리고 퍼지게 된 데에는 선비정신에 입각한 교우들의 글 살이, 말 살이가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4. 개항기에 박해가 종식된 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안중근 토마스의 경우에도, 부친 안태훈이 명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서적 120여 권을 가지고 고향인 황해도 청계동으로 돌아왔을 때 이 서적들을 꼼꼼이 읽고 이해한 후에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친지들과 이웃들에게도 권해서 당시 교세 통계상 으뜸일 정도로 황해도 천주교 신자들이 부쩍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선교란, 알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바탕하여 말과 글로 전하는 것입니다. 이 말과 글에 힘과 권위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는 자신의 삶이 진실해야 할 뿐 아니라 그에 앞선 깨달음이 투철해야 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국 천주교 역사 초기에 진리를 받아들인 선비들이나, 이들로부터 천주가사로 진리를 받아들인 교우촌의 교우들이나 또 이들의 후손으로서 장차 독립운동의 빛나는 모범이 된 안중근 토마스에 이르기까지 신앙 선조들의 말 살이와 글 살이가 이 정도였습니다. 

5. 우리 신앙 선조들의 말 살이과 글 살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이들이 즐겨 읽던 수많은 천주교 서적들 가운데, 마태오 리치가 지은 천주실의, 정약종이 지은 주교요지와 함께 ‘칠극’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태리 선교사 판토하 신부가 지은 책인데, 칠죄종을 극복하기 위한 일곱 가지 수양방법을 저술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짓는 죄의 일곱 가지 근본은 교만, 탐욕, 탐심, 나태, 쾌락, 명예욕, 음란 등인데, 판토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곱 가지 덕행을 제시했습니다. 서양 책을 한문으로 번역한 책이 아니라 판토하가 선교사로 중국에 와서 한문과 중국어를 통해 교양을 배우고 익혀서 유학의 수양론을 참고하여 독창적으로 저술한 책입니다. 

칠죄종을 극복하기 위한 일곱 가지 덕행이란, 겸손과 은혜, 절제와 정절, 근면과 관용 그리고 인내를 말합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이 칠극이라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성경 말씀을 더 잘 깊이 깨우칠 수 있었을 것이며, 교우촌에서는 물론 박해를 받아 관아에 끌려갈 때 믿지 않는 이들에게 좋은 표양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이러한 말 살이와 글 살이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수 있었고 혀를 풀어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교세가 오백 만을 넘는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말 살이와 글 살이는 신앙 선조들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귀와 혀도 열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