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느님 나라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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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느님 나라의 비유

  • 고난을 통해서 자라나는 하느님 나라

 

에제 17,22-24; 2코린 5,6-10; 마르 4,26-34

연중 제11주일; 2018.6.17.; 이기우 신부

 

  1.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은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자라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바비론에 유배되어 포로생활의 고난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제키엘 예언자가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 어떻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번영시킬 것인지를 예언합니다.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일‘ 향백나무에 비유되는 해방 이스라엘은 그 당시 유배생활에 신음하고 있던 동족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이었습니다. 

 

2.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씨앗이 나무로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자연현상과, 아주 작은 크기의 겨자씨가 하늘의 새들이 깃들일 수 있을 정도의 관목으로 자라나는 자연현상에 하느님 나라의 성장을 비유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말고도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대개 그 비유들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여러 가지 기적으로 선포하신 다음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 이미 지상에 다가왔음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적들은 그 징표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인격과 행적 안에서 지상에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현실은, 정작 그 기적을 체험하고 목격한 군중들뿐만 아니라 그분을 반대하는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목전의 관심사에 진실을 알아보는 눈이 가리어져서 혜택을 받아내는 데 관심을 쏟거나 혹은 약점을 잡아내는 데 관심을 쏟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외적인 운명은 그분을 반대하던 적대자들에 의해서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당신의 운명이 귀결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자라나는 씨앗과 열매의 비유를 드셨다는 것은 그분이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바로 고난 속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뜻합니다. 비록 그분의 십자가 수난으로 끝날지언정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현실은 취소될 수 없이 역사 안에서 자라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3. 사도 바오로 역시 코린토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편지를 써 보낼 당시에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삼 년 가량의 에페소 선교 기간 중에 이년 반 동안이나 갇혀있었습니다. 갇혀있는 수인의 처지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편지를 써 보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을 때에도 그는 천막을 만드는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곳곳에서 선교의 성과를 거두면서도 그 성과에 못지 않은 박해를 겪어야 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4. 이렇게, 예언자의 예언과 메시아의 선포 그리고 사도의 증언 모두가 고난 속에서 자라나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가리키는 시대의 징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 균형을 잡기 위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는 전쟁의 어두운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평화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이렇게 극적으로 전환되기까지의 과정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험난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전쟁 이후 종전 아닌 휴전 상태에서 끊임없는 반목과 체제경쟁 속에서 남북한의 사람들은 모두 막대한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전환기에 들어선 지금이후에도 한반도에서 평화가 온전히 정착되기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남북한 사이에 깊어진 이질성의 골을 메워서 동질화시켜가는 과정도 쉽지 않겠지만, 남남 갈등을 추스르는 일도 커다란 숙제입니다. 같은 분단을 겪고 있으면서도 평화를 질시하고 남북 화해를 반기지 않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반평화적이어서 결과적으로 반민족적인 세력에 대해서 유권자요 주권자인 국민은 표로 심판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라는 공동선이라는 잣대로 평가되고 이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5. 금년 들어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평화 정세는 우리 사회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기회입니다. 복음의 씨앗이 이 땅에 들어온 지 이백 사십 여년만이고, 국운이 기울어 나라를 빼앗긴지 백 년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입니다. 박해의 역사가 백 년이요, 식민통치와 분단으로 인한 역사가 또한 백 년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민족의 복음화와 겨레의 성화,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복음화와 공동체화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이 땅에 진리를 들여온 선각자들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박해를 무릅쓰고 치명으로 신앙 진리를 증거했던 순교자들의 뜻을 되새겨서 이 땅에 복음의 꽃을 피우고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6. 한국천주교회는 오백 만명에 달하는 교세로 성장하면서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천주교 수용 이백 주년 기념 신앙 대회 그리고 세계성체대회 등 세 번에 걸쳐 커다란 신앙행사를 치르면서 민족 사회 안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가하면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을 억압할 때에는 민주화 투쟁의 대열에서 복음의 정의로움을 한껏 증거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의 싹이 터서 줄기가 굵어진 격입니다. 이제는 복음화의 봄을 지나 여름입니다. 꽃을 피어야 할 때가 다가온 겁니다. 

 

6. 식물은 자신이 성장하는 가운데 생성해 낸 가장 좋고 귀한 요소들을 골라서 꽃을 피워냅니다. 다음 세대를 번식시키기 위한 암술과 수술도 만들어내고 꽃가루를 이동시키기 위해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꿀도 만들고 향기도 피워내며 보기에 화려할 정도로 아름다운 꽃잎도 만들어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꽃을 피우고 우리 교회가 민족 복음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지금 이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 이제껏 성장하면서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요소들로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 6월 13일 전국 지방 선거를 치룬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몰락,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를 두고 어떤 이들은 보수 세력이 몰락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 노선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평화노력을 지지하는 대다수 유권자들의 평가가 후하게 내려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분단 70년 동안 기형적으로 우경화되었던 우리 사회가 판문점 선언과 북미정상회담으로 겨우 정상화될 기회를 맞이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은 보수 세력을 몰락시킨 것이 아니라 보수 세력을 자임하던 수구반동세력을 심판한 것입니다. 정치 노선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사실은 보수세력입니다. 보수의 가치는 민족과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 명예와 자기희생에 있는데, 이제껏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난 시기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해서 참회하기는커녕 비호하면서 바야흐로 열리는 남북평화의 시대를 외면하고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국민들은 가짜 보수를 심판하고 진짜 보수를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국면에서는 진보 세력이 너무 약합니다. 그동안 우경화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좌경용공시비로 탄압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왕에 지지를 받은 정통 보수는 압승을 거두었다는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더욱 개혁적으로 자신을 쇄신해야 할 뿐 아니라, 정의당이나 녹색당 또 민중당 등 진보 정당들이 더욱 분발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국민들은 이 진보 세력들에게 보수 세력에 못지않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정치가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장차 남북의 정치노선이 통일 코리아에서 만나게 될 때에 건강한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만만치 않은 고난으로 다가오겠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라야 우리 사회는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가톨릭교회도 민족복음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현장선교역량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사도적 권고를 하신 바에 따르면 복음화에는 두 가지 국면과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도적 국면과 요소로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행하는 일입니다. 지난 시기 동안 우리 교회는 이 분야에서 충분한 역량을 길러 왔습니다. 그러나 복음화에 필요한 또 다른 국면과 요소는 비복음적인 사회환경을 복음적 가치로 변혁시키려는 현장적 노력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성장하고 발전하는 가운데에서 소외되어 온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공동선의 혜택이 더욱 널리 고르게 퍼져나가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도 기여할 수 있으려니와 갈수록 중산층화되어 가는 우리 교회를 복음적으로 쇄신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지내온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닥칠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본당사목이 압도적인 우리 교회의 지금 형편에서 현장선교역량을 키우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처지에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산층화된 안정적인 사목환경을 포기하고 함께 가난하고 같이 억눌리는 자기비허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는 예수님의 복음선포양식을 계승하려는, 선교의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새로운 부르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인력과 재정이 너무도 불균형하게 제도적인 사목역량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편하게 예수님을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선교적 마인드가 자리잡을 틈도 없이 우리는 사목 위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균형한 교회 질서 안에서 불필요하고 비복음적인 갈등이 얼마나 우리 교회를 병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잘 지켜온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대견해 하시면서도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오늘날 우리 교회의 처지가 딱 그렇습니다. 바로 사회의 물질주의와 현세지향적 행복 추구 경향을 쉽사리 거스르지 못하는 자세, 가난한 이들을 자선의 대상으로만 삼고 마는 태도, 그래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회개해야 할 바가 그저 개인적인 영성의 과제로만 치부하는 경향 때문에 우리 교회는 여전히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가난하게 되려는 결단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려고 교회가 먼저 넉넉해지려고 마음 먹기 이전에 이미 가진 바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으로써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부르심에 마음을 여는 결단입니다.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그리고 아주 작은 씨앗이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우리 민족의 복음화 노력이 꽃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동북아시아의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