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기억의 지킴이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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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억의 지킴이가 되기 위하여

 

2마카 6,18.21.24-31; 요한 12,24-26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2018.5.29.(화); 이기우 신부

 

오늘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등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 124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들을 복자의 반열에 올리기 위하여 2014년 8월에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주교단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교직을 받은 형제로서, 이 나라에서 하느님 백성을 지키는 임무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성찰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들의 시복은 순교자들이 뿌린 씨앗으로 이 땅에서 풍성한 은총을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리스도 신앙을 영웅적으로 증언한 증거의 상속자들입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그들의 충실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직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신도였고, 그들 스스로 개척해나갔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담겨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한국 천주교를 창설한 주역)과 첫 세대의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해야 합니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특히 난민과 이민자들, 사회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심은 구체적인 자선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그것도 꼭 필요한 것이지만) 사회, 직업, 교육 수준을 개선해나가는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이따금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야말로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 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 있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증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사랑의 얼굴일 때, 그분의 신비체의 친교 안에서 언제나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끌려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의 지킴이가 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당부는 이 땅의 초기 순교자들이 지녔던 꿈과 이상을 우리도 간직하라는 촉구입니다. 신분차별이 엄혹하고 민중이 삶이 도탄에 빠져있던 그 시절에 초기 순교자들은 이 땅의 조선에 하느님의 백성이 가득차서 복음화된 세상이 세워지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분의 삶과 죽음이 씨앗이 되어 복음화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소망한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기꺼이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하여 바쳤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열매가 될 때입니다. 박해 속에서도 삶과 죽음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신 그분들을 따라서 우리도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