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겨레 사랑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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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겨레 사랑의 길

 

사도 10,25-26.34-35.44-48; 1요한 4,7-10; 요한 15,9-17

부활 제6주일; 2018.5.6.; 이기우 신부

 

1. 부활 제6주일인 오늘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요한 1서의 말씀과 그 사랑을 이웃에게 서로 실천해야 한다는 요한 복음의 말씀, 그리고 하느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서 겨레 사랑의 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백 여년 전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던 안중근 토마스는 ‘敬天愛人’이라는 遺墨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그는 일본 관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기꺼이 나라를 위해 죽어가기를 원하면서 장차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세 나라가 이웃이 되어 평화스럽게 살아갈 東洋平和를 꿈꾸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황해도와 평안도 등지에서 뛰어난 선교사로서 활약하던 그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민족 계몽운동을 거쳐 항일 무장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함으로써 후손들이라도 나라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힘써주기를 소망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로부터 백 년 후, 바로 지난 주에 남한의 대통령 문재인과 북한의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민족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로 나가자는 판문점 선언을 했습니다. 이 선언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반백 년 이상을 살아온 겨레가 더 이상 적대시하는 무력대결을 하지 말고 평화스럽게 공존하며 번영을 해 나감으로써 장차 한 민족으로서 자주적으로 통일의 길로 나가자는 선언이었습니다. 

 

2. 평화의 길

우리 겨레는 백 년 전에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삼십 오 년 동안 제국주의 일본에게 식민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기는 했는데,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강대국의 힘으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의 힘으로 해방이 되었는데, 공산화된 소련의 세력이 남하하여 태평양에까지 미칠까와 우려한 미국이 한반도를 3·8선으로 갈라놓는 바람에 해방은 반쪽의 해방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외세의 힘으로 해방되었고 또 외세의 간섭으로 분단된 겨레의 운명이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으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루고 휴전한 채 65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대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북은 북대로 적화통일을 하고자 했고, 남은 남대로 멸공통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을 적대시해 왔고, 특히 소련이 붕괴된 이루 머지않아 붕괴되기만을 기다리며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바람에 북한 경제는 날리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북한은 이에 맞서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국제사회로 나오고자 했지만 미국이 상대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과 대화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싸게 먹히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국제정세를 읽은 남한의 대통령 문재인이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설득하고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습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연내에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으며 북한과 미국이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수립할 것이고, 이에 따라서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이룩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이제는 통일을 내다보면서도 통일이 아니라 평화를 구축함으로써,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구도를 해체해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가치중립적으로 일컫는 이름입니다만, 정식 명칭으로는 우리는 대한민국이요 줄여서 한국이고, 북측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고 줄여서 조선입니다. 

 

한국과 조선은 언젠가는 민족자주적으로 통일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그 때가 될 때까지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가까운 이웃 나라로 지내야 합니다. 이른바 평화의 관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무장화된 비무장지대에서 무기들을 철수시켜 평화지대로 만드는 것, 서로의 군사적 규모를 축소해 나가는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공산화를 뜻하는 적화통일이나 자본화를 뜻한 멸공통일의 노선은 포기되었습니다. 한국 헌법에는 영토 조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 조항을 수정해야 합니다. 또한 이 영토 조항에 따라서 조선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는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반 세기 이상 이질화가 진행되어온 한국과 조선이 한 민족으로서 동질화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평화의 관리와 동질화 과정은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조선 경제를 부흥시키는 일은 한국의 투자와 외국의 원조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3. 번영의 길

통일이 될 때까지 한국은 조선을 도와야 합니다. 이미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제시되었습니다. 조선에 대한 도움은 조선이 갚아야 할 원조로서가 아니라 통일 코리아를 위한 투자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조선의 경제가 부흥되자면 조선의 교통과 통신이 한국 수준으로 설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을 자유로이 만나고 왕래할 수 있을 것이며 전화도 하고 편지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성공단이 재개될 뿐 아니라 비슷한 규모의 공단이 열 개, 스무 개로 확대될 것입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들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위주였지만, 이제 자동차 공업기지라든가 조선 산업 기지, 반도체 산업기지가 조선에도 건설될 것입니다. 

 

대륙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목포에서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로 가고, 부산에서 강릉과 금강산과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사람들은 철도로 중국도 가고, 러시아도 가고, 유럽까지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물류가 선박 중심에서 철도 중심에로 옮겨질 것이며, 시베리아의 가스가 조선을 거쳐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반세기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비무장지대는 환경과 생태가 보전된 특별한 공원으로 관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체육과 문화와 종교의 교류가 급물살을 탈 것입니다. 마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서로 총을 들고 싸웠지만 지금은 유럽 연합의 일원이 되어 국경선이 없는 듯이 서로 오가는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이태리처럼, 한국과 조선도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을 오가듯이 오가면서, 민족 문화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와 협력을 해나가게 될 것입니다. 

 

4. 통일의 길

이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북한 선교로 부르던 노력은 조선 선교로도 바꾸어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외국 선교에서 필요했던 것과는 달리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교세 확장의 차원이 아니라 교회 쇄신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무신론이 의식화된 집단에서 반세기 이상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도 공산당 지배체제가 존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 선교는 자본주의 체제의 나라들에서 선교하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본당을 세우고 예비자를 모집하여 세례를 주고 성사를 집행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딛칠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도 바오로가 소아시아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방식이 더 유용할 것입니다. 바오로는 찾아가는 선교를 했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하는 선교를 했으며, 세례를 주어 신자들을 늘리기보다 감화를 주어 공동체를 건설하는 선교를 했고, 자기 혼자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선교사들의 네트워크를 이루어 선교를 했던 전통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우리도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갈라져서 살아온 세월만큼 지내다보면 한국과 조선은 남북 경제 공동체 단계를 거쳐서 남북 연합 단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경제 수준이 비슷해지고 민족동질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나면 남북 통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 코리아는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연대의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 또한 조선 선교가 지행해야 할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야 동북아시아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선교도, 일본 선교도, 민족 복음화의 연장선 산에서 가능해질 것입니다. 사실 현 시기에서 조선 선교는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일본의 선교에 있어서도 앞장서야 할 사람들은 한국 신자들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의 제국주의 선교정책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구 10억이 넘는 중국이 복음화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만 사도 바오로 선교방식으로라면 결코 넘지 못할 산도 아닙니다. 5백 년 전에 복음이 전해지고 나서도 서양 문화의 침투를 막기 위해 금교령을 내리고 삼백 년 동안 복음을 박해하면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지금까지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중국과는 또 다릅니다. 선교의 자유가 한 세기 이상 보장되어 왔지만 일본의 복음화는 지지부진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복음화되는 길 역시 중국 못지 않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만, 동북아시아라는 작은 문명 단위를 이루어서 공동체적인 선교방식으로 복음화의 추세를 이룩하면 일본 선교 역시 넘지 못할 산이 아닙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은, 정치경제적으로 통일 코리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는 샘이 될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복음화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 사랑으로 겨레를 사랑하면서 동양평화를 염원하던 안중근의 꿈이 실현되는 셈입니다. 군사적으로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사는 이방인들은 물론 조선에 사는 동족을 모두 사랑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