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6.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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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6.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미사 강론

예수회 관구장 정체천 요한 신부

 

기억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기억함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4년 전에 일어난 일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 세월호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억은 구원을 가져오는 힘입니다. ① 교황님 방한 시 세월호 뱃지에 대해 설명하자 뱃지를 달아달라고 하심. 어느 날 뱃지를 떼시게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 다시 달아달라고 하심. ② 2015년 3월 한국주교단의 ad limina 때에 “세월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질문으로 시작하심.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망각증이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실패나 사고, 아픔을 겪을 때에, 우리는 자연히 “왜 그랬지?”를 묻고 반추합니다. 그러면서 사건을 재구성하고 당시 상황으로 들어갑니다. 후회, 가책과 함께 긍정적인 경우에는 책임과 수용, 용서가 뛰따릅니다. 우리는 이 모두를 한 묶음으로 하여 기억합니다. 이러한 기억이 우리 삶을 해석하게 하고 재구성하게 합니다. 기억은 스토리 텔링에서 중요한 과정을 이룹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세월호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내용의 다큐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과연 세월호는 미스테리의 연속입니다. 세월호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진상 규명과 함께 의미 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음과도 같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세월호에 관한 저의 스토리 텔링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저는 과거의 아픔과 함께 미래의 꿈이 떠오릅니다. “4년 전, 그날, 바다, 나”보다 “지금, 오늘, 육지, 우리”에 눈을 돌려봅니다. 의미 규명과 관련하여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사고가 일어난 뒤에 힘을 가진 사람들이 벌인 행태입니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불온시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세월호의 소유자인 유병언씨 이야기, “국가 개조”를 약속한 대통령과 함께 온 국민이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힘있는 사람들이 ‘세월호 애도를 금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란 뱃지를 달고 다니는 시민들을 불온시하고, 세월호 피로증을 퍼뜨리고 관광 산업과 같은 내수경제의 위축을 거론하면서 한사코 애도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7시간을 감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치’라는 것의 어두운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때 정치는 길거리 폭력배들의 패거리 문화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인륜과 천륜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우리는 보아야 했습니다. 금수와 같은 잔인함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어찌 그런 잔인함을 국민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지요! 보아도 못 본척 해야 했고, 들어도 못 들은 척 해야 했습니다. 어려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바로 그렇다고 배웠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이념이 모든 것에 앞선 가치라고 배웠습니다. 빨갱이는 피도 눈물도 없고 아비 어미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워하면서 닮은 것인지 어느새 우리 정부가 우리에게 그런 침묵을 강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런 압력에 굴하지 않고 노란 뱃지를 달고 차고 다녔고 세월호를 애도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4년 전 교황님이 방한하실 때에 이미 세월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① 서울 공항에서 4명의 세월호 유가족을 소개할 때에 잠시 멈추셨습니다. “가슴에 새기고 있다.” ② 124위 시복식 미사 전에 오픈카로 광화문 광장을 순례하셨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세월호 유가족 모여 있었습니다. 오픈카를 세우시고 합장을 한 채로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③ 비행기 브리핑 때에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요 문헌인 사목헌장의 실천입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오늘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입니다.” 교황님은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인간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념에 사로잡힌 박제된 인간이 아니라, 살아 숨쉬고 웃고 울 수 있는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 세월호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님을 대통령에서 파면시킨 진정한 원인은 세월호 사건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지렛대가 되고 미닫이문의 경첩이 되어 철옹성같던 구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었고 꽁꽁 닫힌 권위의 성문을 열어제쳤다. 세월호는 나침반이 되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세월호는 사람들이, 세상이, 대한민국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이 말로 그치지 않은 것은 그 가르침이 목숨을 걸고 일러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었고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으로 우리는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이 기억과 믿음은 우리의 무능력을 치유해주었습니다. 미국인 교수가 쓴 칼럼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를 한국의 대통령이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 국민들을 위로하는 치유의 지도자상을 부각하였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가 탄생한 것은 세월호와 촛불 덕분입니다.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의 삶을 결합시킨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지옥문까지 걸어갔다가 천국으로 올려진 느낌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세월호와 촛불 시위의 연결관계를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촛불시위는 세월호를 겪은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하고 외치는 아래로부터 절규요, 탄핵 결의와 파면은 위로부터의 승인이었습니다. 촛불시위는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와 위로부터의 결정이 만나서 피흘리지 않고 이룬 명예혁명이 된 것입니다. 촛불혁명은 유신독재 후 40년을 지나오면서 우리나라가 이미 민주주의의 선진국이 되어있음을 스스로 확인한 쾌거였습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세월호를 기억하자. 잊지 않겠다.”하고 다짐하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들의 죽음을 보고 죽기를 각오한 수많은 국민들의 함성이 오늘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세월호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사건과 같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참혹하게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잇는 파스카가 되셨습니다.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 안에서 산 이와 죽은이를 잇는 역사적 기호가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회적인 차원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요한복음은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실 것임을 예언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세월호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세월호의 304명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역사의 지렛대가 되어 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세월호는 좌절을 뛰어넘어 희망과 자신감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게” 하려는 기도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음으로 바칠 수 있게 해준 세월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재현인 세월호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꿈꾸신 하느님 나라,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세상, 안식일보다 생명이 더 소중한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도록 기도하고 노력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