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엠마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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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엠마오로 가는 길

사도 3,1-10; 루카 24,13-35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2018.4.4.;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허탈함과 절망감에 빠진 제자 두 사람이 사도로서 가지려던 모든 희망을 내려놓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빈 무덤도 보지 못했고 예수님의 발현도 겪지 못한 오늘날 우리들의 처지와도 같습니다. 이 두 제자가 겪은 일을 루카가 전하는 바를 눈여겨 보십시오.

 

이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그 곁에 낯선 나그네가 다가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길동무가 됩니다. 물론 낯선 나그네로 발현하신 예수님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열두 제자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삼 년동안 예수님 곁에서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 처지였는데도 그러했습니다. 그 세 사람이 나눈 대화는 예언자들이 메시아에 관하여 기록해 놓은 성경 말씀이 주제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 두 제자는 나그네가 풀이해 주는 성경 말씀으로 메시아에 대한 귀가 열렸습니다. 

이윽고 엠마오에 이르러 나그네가 더 멀리 가려고 하는 듯 하자, 그 두 제자가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나그네를 붙잡았습니다. 세 사람은 빵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나그네가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머지 두 사람에게 나누어주시자 그제서야 그 두 제자는 눈이 열려 그 나그네가 예수님이신 줄을 알아보았습니다. 생전에도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도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빵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또 최후의 만찬 때에도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누어주셨던 기억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눈 앞에서 사라지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열린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온 그들은 그분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유다인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뜻은 분명합니다. 바로 미사의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영적인 현실을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말씀 전례에서 메시아에 대한 귀가 열린다면, 그리고 성찬 전례에서 메시아를 보는 눈이 열린다면 우리도 이미 엠마오에 와 있는 셈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을 만난 것입니다. 이 귀는 믿음의 귀요 눈은 믿음의 눈입니다. 

 

사람이 사물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로는 오관의 감각 기능입니다. 즉, 듣는 청각과 보는 시각과 냄새 맡는 후각과 맛보는 미각 그리고 피부 접촉으로 느끼는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으로 사람은 자기 이외의 존재나 환경을 감지합니다. 이 조건은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이 오관을 넘어서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지성입니다. 지성은 기억력과 상상력을 갖추고 있어서 기억력으로는 과거의 일을 현재의 일처럼 지각하고, 상상력으로는 미래의 일을 역시 현재의 일처럼 지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는 이 기억력과 상상력의 지성을 넘어서는 영적인 능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의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현실을 감지하는 능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그 두 제자가 겪었던 현실은 믿음의 귀와 눈이 열려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이 믿음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면, 우리의 모든 한계 상황은 빈 무덤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덤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시신이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사라진 것이듯이, 우리의 모든 한계 상황에서 우리의 모든 힘이 도달한 그 마지막 지점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또한 미사의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에서 믿음이 없다면 그저 성경의 이야기가 들려올 뿐이고 빵과 포도주가 나뉘어질 뿐이겠지만, 믿음이 있다면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 귀를 열어줄 수 있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우리 영혼을 살아있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체험한 현실도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진 돈이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그분의 도구가 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