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443

본문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 온전한 광복을 기리며

 

2역대 36,14-16.19-23; 에페 2,4-10; 요한 3,14-21

사순 제4주일; 2018.3.11.; 이기우 신부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오늘 미사의 응답송이 우리가 어떻게 사순 제4주일을 지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절제와 극기로 사순 시기를 보내는 교회가 오늘은 수난의 목적이자 절제와 극기의 목표를 생각하며 한숨 돌리는 때가 오늘입니다. 

 

제1독서인 역대기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을 겪어야 했던 역사를 회상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즉, 바빌론에서 일어난 칼데아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을 침략하여 성전과 왕궁을 불태워버리고 살아남은 백성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종살이를 하게 한 일은 우상을 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였다는 것이고, 페르시아 왕국의 키루스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유배를 풀어준 일은 하느님을 섬겨온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 귀환에 담긴 역사의 흐름을 하느님 안에서 해석하는 안목이 역대기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은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이집트 문명권의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문명권의 교류와 대결의 파도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종살이는 이집트에서 했고, 두 번째 종살이는 바빌론에서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낀 약소민족의 서러운 운명의 역사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역대기의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역사신학의 관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에 영향받는 외적인 운명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하느님의 개입으로 인한 내적인 운명이 섭리의 손길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는 모세를 시켜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고, 바빌론에서의 종살이는 이방인 임금 키루스를 당신의 도구로 쓰신 하느님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깨닫고 메시아를 준비하는 각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역대기 저자가 소개하는 키루스 임금의 해방령에서 이러한 안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강대한 두 문명권 사이에서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처럼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백 년 전 우리 땅에서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이 일어났던 비운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다투는 각축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을 대표하던 구한말의 조선조정은 이러한 전쟁을 막거나 반대할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제로 침탈당한 식민지배가 끝났을 때도 우리 힘으로 찾아온 광복이 아니었기에, 우리 민족의 염원과는 달리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곧 이어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루었습니다. 이 분단은 당시 공산화된 소련의 영향력이 태평양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7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북에서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공산 정권이 들어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고, 남에서는 미국의 지원과 일본의 협조를 받는 자유 민주주의 이념 하에서 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체제 경쟁을 하던 남과 북이 초기에는 북이 우월했지만 70년대 중반부터는 남이 우월한 채로 대결과 대화를 되풀이하다가, 소련이 붕괴한 90년대 초에 남은 소련 및 중국과 수교를 했지만 북은 미국 및 일본과 수교를 하지 못하고 고립된 채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북은 고립을 탈피하고 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북한을 적대시하는 미국에 맞서 왔습니다. 북한이 미국 및 일본과 수교하고 휴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핵무기를 폐기하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는 정착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및 러시아의 우호적인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이 조건 하에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지를 내용으로 하는 핵동결과 한미군사훈련의 축소 내지 중단을 북미대화의 입구로 하고, 평화협정 체결과 핵폐기를 출구로 하는 북미대화의 출구로 하는 협상이 이루어지면, 전쟁 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서 평화를 항구히 정착시키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는 일은 온전히 남북 정부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이상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낀 한반도에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남북한 정부의 대응 노력에 따라 이루어지리라고 보여지는 국제정세의 흐름이자 예측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붕괴되기만을 기다리며 대북봉쇄와 남북대화 및 교류 단절로 일관하며 소극적인 정책을 폈던 이전 정부들과는 달리, 대북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대화를 표방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현 시기에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강대국들이 벌였던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을 막을 수도, 반대할 수도 없었던 백년 전과 지금은 비록 분단되어 갈라져있기는 하지만 남과 북이 합심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음은 물론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국제정세를 보는 상식적인 안목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전망입니다. 남은 문제는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의 국제정세에서 과연 어떻게 하느님께서 섭리하시고 개입하실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요, 남은 과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당신 백성의 역할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눈으로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민족이 사는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때는 18세기 후반입니다. 그리고 19세기 백 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거의 40년 동안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반쪽의 광복 이후 분단 상태로 70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해를 받은 기간이 백 년이요, 식민통치와 분단으로 고난을 겪은 세월이 또한 백 년입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백 년에 이르는 천주교 박해가 지니는 의미는 하느님을 추구하며 살았으되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일삼았던 우리 겨레에게 하느님을 온전히 알게 하기 위한 희생적 고난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백 년 동안 겪은 식민지배와 분단이 우리 민족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더 이상 강대국들이 우리 겨레를 지배하거나 갈라놓지 못하고 온 겨레가 온전히 하느님을 섬길 수 있기 위한 준비로서의 고난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단 직후 북녘 땅에서 벌어진 천주교 박해나 전쟁 기간 동안 남북에서 모두 벌어진 양민학살의 죄악에 뒤따르는 벌로서의 고난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눈으로 지나간 우리 역사와 향후 미래를 내다보자면, 온전한 광복은 온전한 신앙에 뒤따르는 선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 위한 고난이 필수적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의 목적과 의미는 믿는 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는 말씀처럼,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왔지만 그 복음을 빛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하고 억누르며 갈라놓았던 어둠의 역사가 지금까지의 이백 년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는 말씀처럼, 이제 우리 겨레는 남녘과 북녘의 한겨레는 물론 대륙의 백성들까지도 박해와 억압 없이 하느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온전히 섬기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 어두웠고 힘도 없어서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휘둘려 온 우리 겨레가 이백 년에 걸친 고난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역사의 빛으로 나아가야 할 하느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에서는 무수한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습니다. 이집트도, 바빌로니아도, 로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관심사는 특정 민족의 이합집산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데 그분께서 섭리하시고 개입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남녘과 북녘의 온 겨레가 온전히 하느님을 믿고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 조건과 선물로 온전한 광복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남은 문제, 즉 하느님의 눈으로 본 한겨레의 운명을 전망할 수 있다면 남은 과제는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남긴 권고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저질렀던 우리를 그 큰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작품인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이 선행은 남녘 땅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이를 위한 교회 쇄신을 끊임없이 이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자신을 섭리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하느님께서 이 사순 시기에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의미를 오늘 미사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런 의미로 다시 한 번 오늘 미사의 입당송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