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구원의 희망,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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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구원의 희망, 무지개

 

창세 9,8-15; 1베드 3,18-22; 마르 1,12-15

사순 제1주일; 2018.2.18.; 이기우 신부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제1독서는 세상이 무법천지로 변한 뒤 하느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그분 보시기에 의로웠던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그를 포함한 여덟 사람만을 구하시고 무지개를 보여주심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계약을 세우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받으신 성령께서 그분을 광야로 인도하여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게 하셨는데, 그분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 유혹들을 극복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2독서는 예수님을 따라 그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가 마치 물의 심판에서 노아의 방주로 구원받은 것과 같은 이치를 설명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힘입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 나가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교황께서 방한하셨던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노아’가 있었습니다. 애러노프스키가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한 영화입니다. 그는 일생 노아의 이야기를 묵상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들어서, 영화관에서만 세 번을 보았습니다. 세 번까지 보니까 겨우 이해가 되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시는 물의 심판 속에서 자신도 살아있는 것들의 한 쌍씩만을 살려놓고 죽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홍수 속 방주에서 태어나는 손주까지 죽일 작정을 하고, 자식들도 다 죽인 다음에 자기자신도 죽을 각오를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생명의 경외심 덕분에 자신도 살아남고 자식들도 살리는 노아의 심리 묘사는 탁월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비도 없고 도구조차 변변치 않았을 그 당시에 그 커다란 방주를 무슨 수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풀렸습니다. 바로 거인족 덕분이었습니다. 창세기에는 나필으로 나옵니다. 살생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만 최소한으로 하고, 육식은 하지 않으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경외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노아의 모습은 작가 겸 감독이 일생동안 묵상한 깊이가 드러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노아는 아담과 하와가 낳은 세 아들 중에 셋째 아들인 셋의 후손입니다. 둘째 아들 아벨을 첫째 아들 카인이 죽인 이후 카인의 후예들은 세상에 악을 퍼뜨렸습니다. 그야말로 원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던 악인들이었습니다. 애초에 시기와 질투로 동생을 죽인 카인에게서 난 후손들 역시 악에 물들었을 뿐 아니라 악을 세상에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타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타락상이 어찌나 심했던지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의 눈에 들었던 노아만은 구해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에게 커다란 방주를 만들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옛날의 용사로서 이름난 장사들이었던 나필족이 노아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도 힘을 보탰지만 그 여덟 사람의 힘만으로 새들과 짐승들 한쌍씩을 태울 수 있는 커다란 방주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나필족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도 오지 않는데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비웃던 카인의 후예들이 비가 오기 시작하니까 그 방주에 들어오려고 했고, 이를 막는 일도 나필족의 몫이었습니다. 

사십 일 동안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비가 밤낮없이 내려 온 땅을 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기를 백 오십 일, 마른 땅에 살던 카인의 후예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 후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르기를 기다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와 새 세상을 만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쳤고,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계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인간 없이는 세상을 완성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완성하도록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 완성의 길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성되어야 할 새로운 세상을 하느님 나라라고 부르셨고, 이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엄숙히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그러나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여정에서 필수적인 과정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세워서 이 세상을 완성하는 과정에 왜 사탄의 유혹이 작용하느냐 하면, 그것은 첫째로 타락한 천사인 악마가 세상을 죄로 가득차게 만들어 지옥으로 만들어야 자신들이 인간과 세상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사람들이 욕망을 채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욕망을 고리로 악마가 사탄 노릇을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다가온 사탄의 유혹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물리치셨을 뿐 아니라 그 유혹을 발판으로 삼아 더욱 믿음을 강하게 하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기 마련인 사탄의 유혹은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로 뛰어오르게 해 주는 도약대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을 때에 마귀의 유혹을 끊어버리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원죄와 과거에 지은 본죄를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이는 대홍수에서 벗어난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것과 같은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성령의 기운도 받았습니다. 이는 세례 이후에도 닥칠 수 있는 마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방패를 받은 것이고, 오히려 그 유혹을 도약대로 삼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무지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교회에 들어와 신자로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우리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삶을 목표로 삼고 살아갑니다. 죄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카인의 후예들과는 달리 살아가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키고 앞당기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진복팔단의 삶이요 부활의 삶입니다. 

 

사탄의 유혹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를 도약 발판으로 삼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처지를 하나의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비는 알로 태어납니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제일 먼저 자신이 나온 알껍질을 모두 갉아 먹습니다. 자신이 부화되어 나온 흔적을 없애 버려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입니다. 애벌레는 식물의 입을 먹고 자랍니다. 이 과정에서 몇 번이고 허물을 벗으며 성장합니다. 다섯 번쯤 허물을 벗고 자란 애벌레는 번데기가 됩니다. 겉에서 보기에 번데기는 죽은 듯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나비가 되기 위한 놀라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날개도 만들어내고 더듬이도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드디어 나비는 번데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이 제일 힘든 과정입니다. 온 몸을 비틀며 그 좁은 입구를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이 광경을 목격하던 어떤 사람이 하도 안쓰러워서 번데기 의 좁은 입구를 가위로 조금 잘라서 넓게 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번데기를 빠져 나온 나비가 날개를 몇 번 펄쩍 거리더니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주저앉아 버린 나비는 천적들의 좋은 먹이감입니다. 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비는 비록 힘들지만 그 좁은 번데기를 빠져나오느라 힘을 쓰는 가운데 날개를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키우게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의 무지한 선의 탓으로 그 나비는 날개를 움직일 근육을 키울 기회를 빼앗겼던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사탄의 유혹은 번데기와도 같습니다. 그 유혹을 이겨내느라 믿음의 힘을 다 하는 가운데 믿음이 강해져서 마치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하느님 나라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날개는 이성과 의지로 이루어진 양심입니다. 믿음은 이 힘들을 사용해서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게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언론에 이러저러한 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작자들 중에 양심이 마비된 자들이 제법 보입니다. 우리 말을 잘못 배운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이 가는 자들도 있습디다. 이미 가진 것이 차고 넘치면서도 더 가지려고 법에도 없는 이익을 갑질로 꾀하는 그릇된 의지를 쓰는 자들도 섞여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번데기 상태의 나비가 천적의 먹이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확률이 1/200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떨까요? 부활 신앙이 있는 상태에서라면 그 확률은 100%, 불신앙 상태에서라면 0입니다. 

 

여러분, 무지개가 찬란히 세워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