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영혼에 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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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영혼에 관한 진실

연중 제2주일

 

 

1사무 3,3ㄴ-10.10; 1코린 6,13ㄷ-15ㄱ.17-20; 요한 1,35-42

2018.1.14.; 이기우 신부

 

지난 대림시기부터 개정된 미사통상문에서는 사제와 신자들이 주고 받는 인사말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영과 함께’ 하는 말이 덧붙은 것이지요. 본래 라틴어로 된 경문에 있던 표현인데 번역을 새로 한 것입니다. 그 뜻은 미사라는 전례 의식이 지니는 본질적인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신자들이 모여서 마음으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혼은 미사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왜 믿어야 하는지,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세상의 현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주는 코드입니다.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또 개인이 아무리 많이 배우고 가진 것이 많아도 영혼의 차원에서는 한 치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심지어 퇴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차원으로 전개됩니다. 인간 누구에게나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입니다. 누구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의 바탕 위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현실을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심, 자기 평가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인생의 진로와 비전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에 미국의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햄(Harry Ingham)이 이러한 사람들의 관심과 현실을 체계적으로 알아보려고 하나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델을 이를 개발한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조하리의 창’이라고 합니다. 이 창에는 자아의 영역을 가리키는 네 가지 칸이 존재합니다.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공개영역’이 있고, ‘나는 알지만 남들은 모르는 비밀영역’이 있는가 하면,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맹인영역’도 있고, ‘나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그래서 하느님만 아시는 미지의 영역’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공개영역은 객관적인 신상정보가 해당됩니다. 이름과 나이, 성별, 학력, 주소, 출신 등 주로 개인의 몸에 관한 정보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가 사실은 이 영역의 정보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몸은 변하기 마련이고, 또 사람은 몸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더 잘 알려면 마음까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개영역을 넘어서서 맹인영역과 비밀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영역에는 빛과 그림자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맹인영역을 보자면, 이 영역은 맹인이 자기 모습을 제 눈으로 볼 수 없듯이, 자기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남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좋은 성품과 깔끔한 매너 그리고 잠재력은 빛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좋은 평판을 매깁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보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이나 고약한 매너는 그림자가 어린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나쁜 평판을 매깁니다. 이럴 경우 함부로 충고할 수는 없지만 친한 사이에서라면 진정성 있는 충고를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인간관계가 진해집니다. 아마도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이 맹인영역에 관해서 격려나 충고를 받는다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훨씬 자신감이 생겨날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려면 그 사람 자신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것이 비밀영역에 속한 자아의 현실입니다. 남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자기 자신은 알고 있는 마음의 현실이 있습니다. 빛으로는 꿈이나 희망을 들 수 있고, 그림자로는 죄나 상처를 들 수 있습니다. 꿈이나 희망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노력하게 마련이고,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에 웬만한 시련쯤은 거뜬하게 이겨내려 합니다. 이 꿈과 희망을 알아주고 도와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물질적인 선물보다도 더 가치있는 사랑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온실이 아니며 무균실은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나약하기 때문이며 세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더 큰 힘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처를 알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인간관계는 더할 수 없이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이해하면 다른 이들이 짓고 있는 죄를 통해서 더욱 깊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현실이요 차원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지만 남들도 모르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이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이 미지의 영역은 참된 자아가 숨겨져 있는 영혼의 자리입니다. 자기 성장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성장하고 성숙함에 따라서 앞선 세 영역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 뚜껑이 닫힌 다음에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미지의 영역에 남아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성장시키고 남긴 모습입니다. 생을 마친 다음에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대면하는 모습 역시 미지의 영역 속에 남아있었던 자아입니다. 

 

오늘 첫째 독서는 미지의 영역 속에서 하느님께서 힘을 주셔야 생기를 얻는 우리네 영혼이 부르심을 받는 전형적인 순서를 보여줍니다. 어머니 한나가 기도를 해서 얻은 사무엘은 어머니가 바친 약속대로 하느님께 봉헌되어 성전에서 봉직합니다. 그러던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두 번이나 그랬습니다. 세 번째로 부르셨을 때, 사제 엘리가 그 부르심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부르심이라고 일러주자 사무엘은 그제서야 그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통로인 우리의 영혼이 그분의 부르심을 알아듣고 응답함으로써 생기를 얻는 데 있어서도 그 과정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공개적인 영역을 시작으로 비밀의 영역과 맹인 영역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을 알아듣지 못하고 세상의 죄악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오늘 두 번째 독서가 경고합니다. 사람들은 몸과 몸을 위한 것들에 목숨을 걸다시피 위하지만 몸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것뿐이지 진정한 우리의 자아는 아닙니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건강은 기본이지 최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몸의 건강보다 마음의 건전함이 더 중요하고, 마음의 건전함보다 영혼의 생기가 훨씬 더 소중합니다. 영혼이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이 몸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담아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사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 영혼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성령께서는 마음을 거쳐 몸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 계심을 축하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영혼이 생기를 얻음으로써 몸과 마음도 제 자리를 찾습니다. 영혼이 하느님과 연결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평화를 얻고 몸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혼의 진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영혼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죄 속에 사는 이들을 구해주시러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을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불렀습니다. 영혼 사정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죄를 없앨 수도 없고 알 수조차 없습니다. 

 

애초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요한의 추천에 따라서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메시아를 대망하던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가시는 양식을 직접 체험하고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된 삶의 양식을 겪었기 때문에 매료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형 시몬까지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영혼에 생기를 주시는 마당이 미사입니다. 그분이 “와서 보아라.” 하고 부르시는 잔치가 미사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미사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몸의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되 무엇보다도 생기 있는 영혼으로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듯이 살아가는 인생, 영혼의 존재를 무시하고 돌아가는 세상, 영혼의 품위를 전제하지 않는 문명을 우리는 상상할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영혼이 없는 듯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으며, 그런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하면, 그런 문명을 보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여신 새로운 세상은 영혼이 생기로 가득 찬 인생이요, 그런 인생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며, 그런 세상을 보호하는 문명입니다.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