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주님의 별을 보고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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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주님의 을 보고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

- 교회의 공현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 60,1-6; 에페 3,2.3ㄴ.5-6; 마태 2,1-12

2018.1.7. 이기우 신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이 세상에 구세주로 탄생하신 분이 공적으로 드러난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백성을 준비시켜 오신 하느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에서 메시아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일찍이 이 기쁜 소식을 내다보고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편협한 선민의식을 무색케 하는, 이렇듯 보편적인 복음의 예언이 이사야 예언의 백미요 또한 구약성경 예언의 결론입니다. 

 

편협한 선민의식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율법에 대하여 보편성을 잃어버리고 과도한 충성을 보여 왔습니다. 유다인 제일주의 혹은 이스라엘 중심주의라 할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시오니즘이라고도 부르지요. 그런데 그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인 바리사이였던 바오로가 회심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계시로 전합니다. 즉,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된 그 신비를 전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특히 이방인들을 위하여 주신 은총의 직무이며,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복음입니다. 예언자들을 통해서만 당신을 계시하시던 하느님께서 이제는 몸소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할 계시를 드러내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리라는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가 전하는 동방 박사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동쪽 지방, 아마도 페르시아에서 점성술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별빛을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처럼 우주천문현상에 대한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별자리를 관측함으로써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성술이 유행했습니다. 특히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때에는 하늘에도 새로운 별이 나타나서 큰 빛을 비추리라는 소박한 관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도 그러한 점성술에 입각하여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다가 큰 빛을 내는 별이 새로 나타난 것을 보고, 그 빛을 따라서 새로 태어난 구세주를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구세주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이해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세 명의 동방 박사들은 멜키올, 카스팔 그리고 발다살이라고 불리우는데 각각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황금은 ‘왕 중의 왕’이신 구세주의 권능을 알려주는 것이고, 유향은 세상의 죄를 없애심으로써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구세주의 봉헌적인 삶을 알려주는 것인가 하면, 몰약은 이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 시신에 바르는 향유입니다. 이 세 가지 예물 속에 구세주의 일생이 과연 어떠할른지 매우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동방 박사 세 사람의 경배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신 구세주의 삶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세상의 죄를 없애는 치유와 구마 기적을 일으시키며 십자가 수난으로 부활하시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삶은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가 계승하고 있습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드러났을까요? 에브리 덜레스(Avery Dulles)가 제시한 다섯 가지 교회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제도로서의 교회입니다. 초기에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교회는 제국의 공인을 받은 후 제국종교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회가 되었으며, 모든 신앙생활의 법칙들은 교황으로부터 획일적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교도권과 성화권 그리고 통치권을 행사함으로써 교회는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교회로 자부하였습니다. 제도로써 일치를 이루는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서 드러내는 완전 사회로 나타납니다. 

 

둘째는 신비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여기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거나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는 성령이 교회 일치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위계질서보다는 민주적인 친교가 더 중요하게 간주됩니다. 

 

셋째는 성사로서의 교회입니다. 제도주의적 교회관이 교회의 가시적 구성원이 아닌 비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거부하는 듯이 보이는가 하면 공동체적 교회관은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왜 인간적인 제도에 가입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점을 남기고 있다면, 성사적 교회관은 법적인 제도와 친교의 은총을 성사 안에 통합하고자 합니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을 보이게 드러내는 표지이고, 말씀과 축성으로써 그 힘이 주어집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신 하느님의 성사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넷째는 복음선포자로서의 교회입니다. 여기서는 교회의 본질이 성사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신자들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성립합니다. 이 교회관은 행동을 지나치게 등한시하고 증언에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말씀의 선포자가 하느님의 권위를 행사하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다섯째는 봉사자로서의 교회입니다. 제도적 교회관에서 공적 교회가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린다면, 공동체적 교회관에서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하느님의 백성이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나타나고, 복음선포적 교회관에서 교회는 하느님의 권위로 세상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봉사자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봉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러 세상에 오신 것처럼, 선교를 통해 인류의 형제애에 봉사하려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정의와 평화 그리고 형제애적 가치를 위해 선의의 모든 사람들의 힘을 한데 모으려 합니다. 

 

이상 말씀드린 다섯 가지 유형이 세상에 드러난 교회의 모습입니다.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처음 이 땅에 들어올 때 박해를 백년 동안 받았으나 강력한 제도적 교회로서 그 박해를 이겨내었습니다. 주교와 신부들은 앞장서서 치명의 칼날을 받아 순교함으로써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들여온 이들은 진리를 찾던 평신도 학자들이었고, 제사금지령으로 양반 신자들이 흩어진 후에도 평민 출신의 평신도들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찾아온 일제 강점기에 한국천주교회는 정교분리 노선을 내세워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제와 일정한 타협을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돋보이는 인물은 순교자들로부터 이어온 신앙에 입각하여 독립운동을 감행한 안중근 토마스입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천주교회는 제도적 교회로서의 모습이 완연하였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국내적으로 유신독재체제가 들어서면서 박해시대 때 순교로써 저항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정의구현을 외치는 사제들이 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의라는 가치에 봉사함으로써 세상을 민주화시키려던 봉사자로서의 교회였습니다. 이때가 1970년대입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천주교회는 비약적으로 교세가 늘어났습니다. 70년대에 보여준 정의로운 모습의 덕분이기도 하고, 세 차례에 걸쳐 거행한 대규모 신앙대회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1981년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신앙대회 그리고 1989년의 세계성체대회였습니다. 여기서 한국천주교회는 경건하면서도 일사불란하고, 봉사적이면서도 친교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성체성사의 거룩한 모습이 드러난 것도 반드시 들어야 할 근거일 것입니다. 공동체적이고 봉사적이면서도 성사적인 교회가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의 복음선포는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하되, 성사와 더불어 그리고 공동체적이면서도 봉사적인 사도직 활동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주님의 공현이 우리 자신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를 성찰하면서, 내 주변의 세상 사람들에게 내 신앙이 어떻게 공현되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도 또한 주님의 별을 찾아 그분께 경배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