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평화를 이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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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이루는 사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2018.1.1.  이기우 신부

 

새 해 첫 날, 교회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 어느 민족보다도 평화를 절실하게 염원하면서 교황의 메시지를 받아들입니다. 교황께서는 평화를 찾아 나선 이민자와 난민을 포용하자는 호소를 하셨습니다. 평화에 관한 교황의 시선과 관점으로 한반도와 한겨레를 바라보면서 평화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성탄절 밤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선포한 평화는 모든 이들과 모든 민족, 특히 평화가 없는 곳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강한 열망입니다. 특히 동족상잔의 전쟁을 통해 수백 만명이 죽고 다치는 인명피해와 전국토가 폐허가 되어버리는 비극과 불행을 겪고도 지난 65년간 남과 북이 불안한 휴전체제를 유지하면서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안보위기 속에 있는 한겨레에게 평화는 한층 더한 열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북측은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까지 만들고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하면서 전쟁에 대비하고 있고, 남측인 우리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맺고 북측의 40배가 넘는 국방비로 엄청난 군비를 무장하여 전쟁에 대비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대결 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인지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측은 지속적으로 북한을 적대시해 온 미국의 압박 때문에 핵무기로 자신을 지키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 내지 동결하지 않는 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없음은 물론 대화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에 우리는 소련 및 중국과 수교했지만,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수교하지 못했습니다. 북한 체제가 머지않아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립된 북한은 지속적인 대북제제와 압박 속에서도 꾸준히 핵무기를 개발해 왔고 최근에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는 미사일까지 완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어려움은 남북한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6.25 전쟁을 마무리짓는 휴전협정에서 북한은 중국과 함께 미국을 상대로 조인했고 남한은 당사자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는 6.25 전쟁 당시 군사작전권을 미국에 넘긴 이래 아직 독자적인 군사작전권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군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남한과 상대하지 않고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 합니다. 

 

물론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의 7.4 공동성명을 비롯해서 1991년에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 2000년의 6.15 공동선언, 그리고 2007년 10.4 공동선언 등 여러 가지 합의를 북측과 이루어낸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남북간 합의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는 데는 이러한 사정이 깔려 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휴전협정을 대체할 수 있는 평화협정을 당사자인 남북한은 물론, 휴전협정의 당사국이었던 중국과 미국이 함께 체결하고, 북한이 미국 및 일본과 수교함으로써 상호간에 체제를 보장하는 일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위해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과 한미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의미하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상’을 병행하는 ‘쌍궤병행’을 제안하고 있습니다만 이 제안은 미국이 현재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과 북한의 대미정책이 평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지혜는 관상의 시선을 도모합니다. 하느님께서 평화를 약속하신 바를 관상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온갖 평화의 장벽을 넘어서는 연대와 형제애와 선과 진리 그리고 정의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됩니다. 관상의 시선은 한반도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모든 이들의 분별력을 이끌어 내고, 국제적 공동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평화의 정책을 추구하도록 촉구합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은 이미 평화의 싹이 트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우리는 또한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용서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도전입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북녘 동포들에게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하는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한국인이 북녘에 살든 남녘에 살든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 인식이 더욱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제재하고 압박하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공조하면서도, 인도주의적 지원의 끈을 놓지 않고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교회의 가르침과도 부합합니다. 사드 배치로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과 동맹으로서의 보조를 맞추면서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과도 경제적인 교류로 이해를 구하고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같은 것을 추구하려는 현 정부의 대미·대중 외교정책도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염원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 평화는 비단 한겨레에게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사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를 회복한 남북한 한겨레는 통일 코리아를 향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에 평화의 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므로 행복하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울러 천주의 모친이시자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 한반도와 한겨레의 평화를 위하여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새 해를 시작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