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6]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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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사회교리 6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집회 48,1-4.9-11; 마태 17,10-13

2017.12.16.; 이기우 신부

 

지난 연중 제33주일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제창하여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처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일’을 지냈고, 내일 대림 제3주일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정한 자선주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당신을 은밀하게 드러내셨던 하느님께서 모세가 인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적으로 드러내신 사건이 이집트 탈출 사건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강성했던 이집트 민족이나 가장 부유했던 바빌로니아 민족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수효도 적고 힘도 없이 가난했던 히브리족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 3,7) 그래서 강성한 이집트로부터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히브리족을 더 강하신 힘으로 이끌어내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 권능을 드러내시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습니다. 

 

어렵사리 왕국을 건설하고 다시 분열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당신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불처럼 일어선 엘리야가 횃불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듯이 예언자들은 열정적으로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들을 모질게 박해했습니다. 그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알아보지 못했고, 알아본 경우에도 우상을 숭배해온 관습이 주는 편리함과 이득에 취해서 그들을 못살게 굴거나 죽여버렸습니다. 마지막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마저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마저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본시 열두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시켜 땅을 무상으로 분배해주었고, 일곱 번째 안식년 후에 맞이하는 희년에는 분배받았을 당시의 원래대로 토지를 돌려주도록 하는 희년법을 만드셨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아합 왕 시대에 벌어진 나봇의 포도원 강탈 사건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희년법은 강자와 부자들의 탐욕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이 받들어야 했을 하느님의 법을 새로이 실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희년 선포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 선포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 희년 선포의 내용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약속하셨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사랑을 잣대로 해서 심판하시겠다는 선언도 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당부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 복음선포의 최우선순위로 가르치신 바를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으로 가르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교회도 복음화될 것이라는 이치는 복음화의 신비이며, 성체성사의 신비와도 직결되는 내용입니다. 

 

말씀과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고 계심을 믿고 알아보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 안에도 그분이 현존하심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난한 이들도 거룩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가난한 이들은 세상의 죄악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겪는 이들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제일 먼저 복음화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도 없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로 인해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때라야 비로소 하느님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교회는 비로소 세상의 현실에 눈을 뜨고 그들을 괴롭히는 죄악의 실체를 목격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세상의 죄악을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