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5} 하느님 지혜의 自明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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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느님 지혜의 自明性:

사회교리 ⓹ 보조성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이사 48,17-19; 마태 11,16-19

2017.12.15.; 이기우 신부

 

일전에도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해 드린 바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면 아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당해봐야 알고, 답답한 사람은 당하고 나서도 모른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공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아, 네게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게도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들었던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도 제멋대로 살아감으로써 바빌론 유배를 당하게 된 과거를 염두에 두고 쏟아낸 한탄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현명하고 똑똑했다면,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래처럼 많아졌을 것이고, 후손들의 이름도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훈계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가난해서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당시의 공생활 활동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인 반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사람들과 같다.” 여기서 곡을 한 사람에 비겨진 사람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경건한 생활양식으로 세례를 선포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라고 외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여 세례를 받고 회개했지만, 고위층에 해당하던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들은 요한이 마귀에 들렸다고 비난하며 회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피리를 분 사람에 비겨진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분은 가난해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시며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질병의 치유나 들렸던 마귀를 쫓아냄으로써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함께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을 거부했던 고위층들은 예수님을 두고는,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중상모략을 해댔습니다. 이쯤되면 단지 어리석거나 답답한 정도를 넘어서서 멍청하거나 사악하다고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즉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거나 답답한 행태를 보이고, 지도층은 한술 더 떠서 멍청하거나 사악한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른바 지혜의 自明性입니다. 

지혜가 이룬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적을 행하셨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곳곳에 뿌리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느님 백성이 새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열두 제자나 일흔두 제자처럼 윤곽이 확정된 백성도 있었고, 라자로나 니코데모 또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나 가믈리엘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곳곳에서 예수님 일행을 환대해 준 사람들이나 시중을 든 여인들 같이 흩어져 사는 백성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새로이 모인 이 백성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났음을 기뻐하며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이들을 만나셨을 때, 그들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즉 눈이 멀었든지 귀가 멀었든지 혹은 등이 굽거나 다리를 절었든지 또는 마귀가 들렸든지 아니면 간음을 하다 잡혀왔든지 상관없이 일일이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시며 대화하시고 필요한 도움을 그들의 믿음에 따라 베푸셨습니다. 이를테면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어 가족과 함께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찬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의 표현을 빌자면,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로 꺾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회교리 용어로는 보조성 원리라고 합니다. 누구나 공동선이 필요하지만 또한 누구나 공동선에 기여해야 합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율법을 잘 모른다고 하여 내쳐서도 안 되고, 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병에 걸렸거나 마귀에 들렸거나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들의 인격이 유린되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천사들이 하느님 앞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있으며 이러한 천사들의 보호로 말미암아 그들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변화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많다거나 재산이 많다거나 권력이 있다 하여 무식하고 가난하고 힘 없는 백성이 해야 할 바를 대신해 주어서도 안 됩니다. 누구나 스스로 각자의 몫을 해야 합니다. 공동선에 가장 큰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고, 지식층도 부자도 그에 버금가는 책임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선을 위해 각자의 몫으로 기여하는 것, 이것이 보조성 원리입니다. 이 원리 덕분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백성을 모으실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