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4]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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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는 자들

 사회교리 ⓸ 연대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이사 41,13-20; 마태 11,11-15

2017.12.14.(목) by이기우 신부

 

오늘은 교회의 진면목을 아는 교회학자요 신비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를 기리는 날입니다. 어린 시절에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그는 가르멜 수도회에서 수도 생활을 하다가 사제가 되었으며,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영성생활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가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다가오는 부활의 신비가 교회의 생명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말로써만이 아니라 온 삶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을 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탈 때, 그들과 함께 갈증을 겪어주시는 하느님을 이사야는 예언하였습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응답하시는 하느님,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증언한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세례자 요한은 가련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예언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그는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는 크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까닭은 가련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말씀보다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고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하느님을 외치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시는 말씀은,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폭력’이란 구체적으로 당시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이 가련하고 가난한 이들을 종교적 율법으로 억누르고 경제적 수탈로 착취하는 모든 행동과 더불어 이 행동을 위장하기 위한 온갖 말을 뜻합니다. 그들은 이런 행동들과 말들로 자신들이 하늘 나라를 독차지할 것처럼 처신을 했습니다. 지배층의 이런 폭력은 로마 제국이 자행하던 식민통치 폭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이 일상화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힘 없는 이들이 받는 상처가 컸습니다. 프란츠 파농에 의하면, 로마와 사두가이 및 바리사이들이 가한 폭력은 수직폭력이요 백성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수평폭력입니다. 수평폭력은 수직폭력을 없앨 때에만 사라질 수 있습니다. 수직폭력이 수평폭력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백성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을 빌미로 백성의 무지함과 폭력성을 비난하는 지배층의 도덕적 태도는 터무니없는 위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수직폭력과 수평폭력보다 더 근원적인 폭력이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폭력없는 세상을 바라시며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간파하신 바,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말씀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를 위해서 정작 필요한 것은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고통을 함께 하는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행동입니다. 사회교회에서는 이를 연대성의 원리라고 설명합니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이나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라,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자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회적 약자들과 당신이 강력하게 연대하고 계심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베푼 도움이 곧 당신께 베푼 도움으로 간주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와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모른 체하는 것은 심판을 받아 커다란 벌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연대성은 죄의 구조로 말미암아 희생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공동선을 위하여 투신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애덕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하느님 나라를 빼앗으려는 악인들에게 맞서서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께서 만드실 새로운 세상은 연대성이 충만한 인간 사회입니다. 

copyright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