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3] 예수님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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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수님의 멍에

   사회교리 ⓷ 공동선 원리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이사 40,25-31; 마태 11,28-30

 2017.12.13.(수) by 이기우 신부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를 기리는 오늘, 독서에서 들으신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참 모습에 대해서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이집트의 강한 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주신 하느님 정도로만 알고 있던 동족들에게 이사야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관하여 말합니다.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등 당대의 강한 민족들이 저마다 자랑하던 부족 수호신의 반열과는 아예 급이 다른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면서도 그분의 힘은 우주에 비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피곤한 이들과 기운이 없는 이들에게까지도 힘을 주시고 기력을 북돋아 주실 만큼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당신의 복음선포 활동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이 말씀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어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고생스럽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 대신에 당신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힘이 없습니다. 그 없는 힘으로 무거운 짐을 메고 살아가니까 고생스러운 것입니다. 정치적인 지위로나 경제적인 능력으로 보자면 예수님께서도 보잘 것이 하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런 것들 때문에 주눅이 들지도 않으셨고 따라서 힘겨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세상에서 한 자리를 하러 오신 분도 아니고 재산을 목표로 살아가려는 분도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오셨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셨고, 그 나라가 내세에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목표의 변경을 요청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것이 그분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엄청난 발언을 하실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적인 권력을 휘두를만한 지위에 있지 않으시면서도 권력자들에게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의로웠던 세례자 요한을 무자비하게 참수한 헤로데 영주에게도 ‘여우 같은 헤로데’라고 비판하셨으며, 로마 총독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던 대사제가 관할하던 예루살렘 성전도 뒤집어엎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율법에 관한 지식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던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벌여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놓기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라도 그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면 안식을 얻으리라는 장담을 하신 겁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하느님에게서 얻을 수 있는 상태를 공동선이라고 합니다. 이 힘은 각자가 스스로 하느님께 청해야 하고 자기 노력을 다 해야 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야 합니다. 특히 국가 권력은 국민 모두가 저마다 살아갈 힘을 얻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동선은 국가 정치권력의 존재이유입니다. 각 개인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말과 글을 배울 수 있고 건강을 지킬 수 있으며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 각 부처의 존재이유인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선은 최고선을 지향해야 합니다.

최고선이란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섬김으로써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공동선이 현세에서의 삶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최고선은 내세에서의 삶을 이 현세에서도 지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현세의 공동선이 최고선을 지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최고선을 지향하는 공동선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고생스럽고 무거운’ 인생이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선이 충족된 세상은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구현되며 평화가 실현된 문명사회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돌아가는 세상이 결국 공동선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고 인간 세상의 공동선을 돕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배운 사람들이 주역이 되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을 맞이하는 세상입니다. 

copyright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