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2] 잃어버린 양 한 마리

32 2017.12.1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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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 한 마리

  • 사회교리2 :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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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이사 40,1-11; 마태 18,12-14

 2017.12.12. by 이기우 신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리는 이 대림시기에 오늘 독서는 하느님께서 목자처럼 당신의 양떼를 찾아오시어 돌보아주신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본시 바빌론 유배의 종식을 예고하려는 뜻에서 나온 이 메시지는 아직도 힘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고달픈 이 세상에 하느님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목자처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다시 오시는 하느님께서 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당신의 공생활을 두고 전반적으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로 빗대서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서 도움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다시 살아갈 희망을 되찾아주는 일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목동의 행동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양이라는 동물은 다리가 짧아서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서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다리가 약한 새끼 양이나 새끼를 밴 어미 양은 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을 치는 목동들은 수시로 양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숫자를 확인하는데, 단 한 마리라도 보이지 않으면 즉시 찾아나섭니다. 자칫하면 늑대 같은 짐승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고 도적질 하는 삯꾼들에게 잡혀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나머지 양떼는 자기들의 주인 목동이 오기까지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서들이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장애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으며, 마귀 들린 사람이거나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비유에 나오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도 같은 신세였습니다. 

 

최근에 포항에 지진이 나고 수능 시험이 연기되는 바람에 세간의 관심이 온통 지진과 수능에 쏠렸을 그 당시에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이 현장실습을 하다가 기계에 깔려 목숨을 잃고 만 사건이 있었습니다. 포항 지역에 사는 수능 수험생은 전체 수험생의 1%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들 때문에 수능이 연기되니까 불평을 하는 수험생들도 생겨나기도 했고 강남의 일부 학원에서는 일주일짜리 수능 대비 특강을 발빠르게 내놓기도 했습니다만, 정작 수능을 포기하고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나가야 했던 특성화 고등학생들은 연대 집회를 벌였습니다.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겠지요. 그들이 팻말에 써서 가지고 나온 구호는, “왜 현장실습을 하다 죽어야 합니까?” 하는 질문과, “故 이민호 실습생의 죽음은 우리들의 현실이다.” 하는 외침이었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이렇듯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사람은, 재산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건강이든 사회적 지위든간에, 힘이 없다고 하더라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원리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중요한 이유는 존중받아야 할 그 대상이 힘 없는 사람들이고 불쌍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되었고 따라서 하느님께서 존엄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닮은 인간도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가 깨질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가 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존엄성이 주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 없는 이들이 짓밟힐 수 있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 현실 뒤에는 사람들의 죄가 숨어 있습니다. 죄는 자기가 현세에서 편하게 살기 위한 이득을 향한 욕망과 자기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저질러집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를 지옥에 가깝게 만드는 원죄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대로, 예수님께서는 원죄의 결과로 하느님과 멀어진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써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충만히 밝혀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현실은, 본래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친교입니다. 이 친교는 사람이 자기 혼자 힘으로는 달성할 수 없었으나,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 친교를 함께 누리도록 세워진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이 친교의 힘으로 교회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도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나서야 하고, 돌보아야 하며,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copyright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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