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깨어 있어라” : 네 번째 동방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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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어라” : 네 번째 동방박사 이야기

대림 제1주일

 

 

이사 63,16ㄹ-17.19ㄷㄹ;64,2ㄴ-7; 1코린 1,3-9; 마르 13,33-37

 2017.12.3. by 이기우 신부

 

세상의 달력으로는 일년의 마지막 달인 이 12월에 교회는 새로운 전례주년을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먼저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까닭은 구세주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례주년의 시작은 대림 시기입니다. 

 

  대림 제1주일인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져 하느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죄악이 하도 바람처럼 휩쓸어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이 나뭇잎처럼 시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듯이, 제자들에게 조심하고 깨어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들지 말고 집주인이 돌아올 때 깨어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대림시기를 맞이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다가 그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몸은 먹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며 또 잠을 자야 쉽니다. 이 몸을 움직이는 마음도 몸이 잠을 자면 쉽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인간의 의식도 가라앉고 그 대신에 무의식이 발동하여 꿈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도 몸이 잠자는 동안에는 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깨어 있어야 하는 주체는 영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이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이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영혼이 깨어 있으면 결국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네 삶이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영혼으로 이 대림시기를 맞이해야 하는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있습니다. 미국 개신교의 목사 헨리 반 다이크가 쓴 소설 ‘네 번째 동방박사’입니다. 영어 원제목은 ‘The Fourth Wiseman’, 혹은 ‘The Other Wiseman’으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동방박사를 기리는 때는 성탄 후에 맞이하는 공현대축일이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세 명의 동방박사가 아니라 구세주를 찾아 경배하겠다고 무려 삼십년을 찾아 헤매었던 네 번째 동방박사가 천신만고를 겪은 끝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혼으로 만나뵈옵고 경배드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이 대림시기에 더 어울립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네 번째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간추려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며 점성술을 연구하던 의사 아르타반은 당시 페르시아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난 불에 가족을 모두 잃어버리고 점성술 연구에만 몰두하던 어느 날밤 드디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초신성이 커다란 빛을 내뿜으며 나타난 것을 보고 같은 관심으로 별을 관측하던 동료들과 메시아를 찾아가서 경배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 세 동료의 이름은 멜키올, 발타살 그리고 카스팔입니다. 멜키올은 태어나실 메시아가 왕 중의 왕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을 예물로 준비했습니다. 발타살은 그러나 메시아이신 그분은 세상의 여느 왕과 달리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실 것임을 내다보고 시신에 발라드릴 몰약을 준비했고, 카스팔은 그분이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일생을 바쳐서 세상의 죄악을 없애시려는 봉헌의 삶을 살아가실 것임을 내다보고 유향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더 부유했던 아르타반은 전재산을 처분해서 세 가지나 되는 보물을 준비했습니다. 사파이어, 루비 그리고 진주였습니다. 메시아를 만날 수만 있다면 전재산으로 마련된 이 보물보다 값진 것을 얻으리라는 기대가 아르타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보물보다 값진 것이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려주시리라는 기대로서 차라리 그의 신앙에 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재산을 처분하고 함께 갈 사람을 더 모집하느라 분주했던 아르타반은 주변의 몰이해와 냉대 속에서 단 한 명의 동료도 얻지 못한 채 세 동료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습니다. 그 네 사람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막의 초입에 있는 보른시파에서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들을 혼자 보내기가 안쓰러웠던 아르타반의 아버지는 자기 하인 오른테스를 구슬러서 자기 아들을 돌보아줄 것과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자유의 몸이 되게 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아들과 함께 딸려 보냈습니다. 

 

열흘 길 거리를 밤낮으로 달려 약속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아르타반은 거의 다 죽어가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냥 두고 가자는 하인의 독촉을 흘려 들으면서 아르타반은 자신의 의술로 그 노인을 돌보며 임종을 지켜주었습니다. 마침 그 노인은 히브리인이었고 메시아께서 나실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이라는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로 가려면 사막을 건너야 했고 그러자면 낙타들로 이루어진 대상 행렬에 합류를 했어야 하는데, 히브리 노인을 돌보아주느라 지체하는 바람에 약속장소였던 보른시파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동료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르타반은 메시아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예물 중에 사파이어 보석 한 개를 팔아서 낙타 여러 마리를 사고 함께 갈 상인들도 고용해서 직접 사막을 건널 준비로 단독으로 대상을 꾸렸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이 모든 사정을 아시고 반드시 자신을 기다려주실 것이라고 아르타반은 스스로 달랬습니다.  

 

  거의 이천 km를 여행해서 베들레헴에 당도했을 때, 꿈에 나타난 천사가 헤로데가 아기를 죽이려 하니 급히 서둘러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전갈을 받고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마리아와 요셉 부부와는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한 아기 엄마에게서 들은 것은 동방박사들이 며칠 전에 다녀갔다는 사실과 그들의 경배를 받은 직후 아기와 그 부모는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닥친 것은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죽이라는 헤로데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이었습니다. 그 군사들의 대장이 아기 예수님과 똑같이 어린 아기를 죽이려 하자 아르타반은 메시아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예물 중 루비 보석 한 개를 주며 대장을 매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진주 보석 한 개뿐이었고, 아르타반과 오른테스는 이집트로 피신한 아기 예수님을 찾아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왕궁터만을 찾아 다니다가 구약성경을 잘 아는 히브리 현자를 만나서 태어나신 메시아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비천한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전해 듣고는 이집트를 떠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빈민굴만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분을 찾지 못한다면 자기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신념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벌써 고향을 떠나온 지 십 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거지 소년들에게 마지막 남은 진주 보석을 소매치기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들을 쫓아 그들이 사는 마을까지 간 아르타반과 오른테스는 그 마을 살던 한 여인으로부터 눈이 멀게 된 자기 아들을 고쳐주면 훔쳐간 보석 진주를 돌려주겠노라는 말을 듣고 그 눈먼 소년을 고쳐주었습니다. 약속대로 진주는 돌려받았지만 그 마을에는 문둥병자를 비롯해서 절름발이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투성이였고,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소매치기와 구걸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르타반은 자기 의술을 동원해서 그들을 고쳐주는 한편 농사짓는 방법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이래서 씨앗을 뿌리고 거둘 때까지 한 해가 또 흘러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 재촉하는 보른테스의 말처럼 그들을 떠나서 메시아를 찾아다니고 싶었지만, 이미 은인이 된 그를 쳐다보는 그 가난한 이들의 눈망울 때문에 아르타반은 하루만 더, 또 하루만 더 하면서 지냈습니다. 첫 농사의 수확과 함께 해산을 하는 젊은 여인의 아기를 받아주는 기쁨도 누리면서, 그러기를 한 해, 또 한 해 그들과 무려 이십 년 가까이 살면서 제법 정도 들고 메시아를 찾는 일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눌러 앉아 살던 아르타반은 우연히 찾아온 고향 친구로부터 자신을 기다리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합니다. 그래서 하인 오른테스에게도 자유를 주어 풀어주고 메시아를 만나면 드리려고 간직하고 있던 진주 한 알마저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버립니다. 메시아를 찾기만 하다가 흘려보낸 삼십 년 세월을 회상하며 자기 신앙이 환상은 아니었는지 회의감에 젖어서 늙고 지친 몸으로 자기 자신도 가난한 마을의 주민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던 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자신이 치료해 주던 눈먼 소년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만났고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그분이 메시아가 틀림없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예물마저 주어버린 그가 그분을 만나러 가기를 주저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 진주를 다시 돌려주며 그분을 만나서 하려던 일을 하라고 조르는 바람에 그는 용기를 내어 예루살렘으로 그분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된 마을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간 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벌이신 집까지 찾아갔지만 이제까지 그러했듯이 또 뒷북이었습니다. 방금 떠나셨다는 집 주인으로부터 그는 평소에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듣고 역시 힘 있는 진리를 말씀하셨다는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겟세마니 동산으로 찾아가는 길에 그는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께서 잡혀가셨고 재판을 받고 계시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 다음 날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신다는 곳까지 찾아갔지만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죽임을 당하리라는 오른테스의 말을 듣고는 마지막 남은 진주를 주어서라도 예수님을 풀어내보려던 그는, 뜻밖에 아버지의 부음을 알려주었던 고향 친구가 운영하던 무역선이 난파되어 그 친구의 외동딸이 노예로 끌려가게 된 사실을 접하고는 그 진주를 내주어 친구 딸을 살려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향하시던 예수님을 뒤따르던 군중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멀리서 골고타 언덕을 바라보던 아르타반에게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는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이 유언을 들으며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오는 길에 늙고 병든 아르타반은 힘들고 지쳐서 길에서 쓰러져버렸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아르타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나타나셨습니다. 그에 감격한 아르타반이 아무 것도 드릴 게 없다고 죄송스러워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준 선물을 모두 다 받았다.”고 대답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까지 아르타반이 행한 모든 선행들, 즉 죽어가는 히브리 노인을 돌보아준 것, 죽을 위험에 처한 베들레헴의 아기를 구해 준 것,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향 친구의 외동딸을 구해 준 것 등이 모두 당신에게 해 준 선물이라고 해 주셨고 그 말씀을 들으며 아르타반은 눈을 감았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줄거리는 마태오 복음서에 등장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를 경배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쓰여진 교훈적인 소설과 영화의 내용입니다. 

 

 

  다시금 맞이하는 이 대림시기에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시면서 우리 모두가 네 번째 동방박사임을 다짐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르타반이 그러했듯이,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우리의 사랑이 구세주께 드리는 진정한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다짐하는 것이야말로 이 대림시기에 우리 영혼이 깨어 기다리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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