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바오로의 사도직-현명한 처신

60 2017.11.10 09:56

본문

바오로의 사도직

 

로마 15,14-21; 루카 16,1-8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17.11.10.(금) by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실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영리한 집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집사는 평소에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쫓겨날 지경에 이르러서도 다음 자리를 노리고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인심을 썼습니다. 자기의 재산이 아닌 주인의 재산으로 부당한 유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미 재산이 넉넉했던 주인은 마음도 넉넉했던지 그 집사를 칭찬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면서 그 편을 드셨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반어법적인 해학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그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비유입니다. 

머리를 잘 써서 나쁜 일을 하면 영리하다고 하지만 좋은 일에 머리를 잘 쓰면 현명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현명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일도 그 취지가 선하고 좋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령칠은에서 말하는 의견의 은사나 지식의 은사뿐만 아니라 통달의 은사도 필요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선교활동을 회고하면서 다른 민족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해 왔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바오로 사도는 그야말로 현명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우선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기 명예로 삼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출신이 아니라 부활하신 후에 소명을 받은 비주류 출신이었으므로, 주류 출신의 사도들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및 로마 일대에 흩어져 사는 할례 받은 유다인들에게 선교하러 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직을 받았다고 자임을 했지만, 그 당시에 유력하거나 좋은 가문 출신의 이방인들보다도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이방인들을 선택해서 선교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교우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손수 천막 만드는 노동을 해서 생계비와 선교활동비를 마련했습니다. 

세 번째로, 그는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가급적이면 자신이 세례를 주기보다도 그런 일은 아폴로 같은 사람, 즉 주류 사도단에서 파견한 사도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생활의 모범을 보여서 사람들에게 감화를 줌으로써 공동체를 건설하였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편지 속에는, “나를 본받으십시오.”라든지 “주님께서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같은 표현들이 나오는데, 이 표현들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세례를 주는 일보다 감화를 주는 일이 훨씬 더 어렵지만 더 확실한 변화인 것도 사실입니다. 

네 번째로, 그는 복음을 전하여 공동체가 세워지면 좀 부족하다 싶어도 현지 교우들 안에서 지도자를 세우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선교하러 떠났습니다. 즉, 자신이 사도의 권위를 내세워 군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 분란이 생겼을 때 사도 바오로에게 문의를 하는 일이 많았고 이에 답변하느라고 편지를 많이 써야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글을 쓰는 재료는 파피루스와 양피지뿐이었는데, 값싼 파피루스는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그는 비싼 양피지에다 자신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천막 노동으로 생활했던 사정을 감안하면 그는 엄청난 투자를 한 셈입니다. 이렇게 하여 쓰여진 편지가 공동체들 사이에서 회람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미사 중 말씀 전례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현명한 처신을 한 바오로 덕분에 소아시아 일대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복음이 널리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를 세우는 데 있어서 공동체 교우들의 발언권을 중시한 그의 태도는 교회직무를 맡을 교역자를 세우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오늘 우리 교회가 기리는 레오 교황 재임 중에 열렸던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서품 공시 제도로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 제도의 유래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현명한 처신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전통 위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는 덕행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기본이 되는 것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주덕이고, 목표가 되는 것은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복음덕이며, 필수적인 것은 지혜와 용기와 정의와 절제의 사추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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