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행복한 사람들

61 2017.11.02 10:30

본문

행복한 사람들

 

묵시 7,2-4.9-14; 마태 5,1-12ㄴ

모든 성인 대축일 · Nov.1,2017(수) · by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11월의 첫 날입니다. 교회는 위령성월을 맞이하면서 그 첫 날인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을 지냅니다. 천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 오늘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성인’은 오늘 교회가 기리는 천상의 모든 성인들뿐만 아니라 그분들을 본받으며 살아가는 지상의 모든 신자들도 포함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신자들은 천상의 성인들이 살아가신 삶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분들의 전구를 청하면서 살고 있고 또 실제로도 그분들의 기도 덕분에 이미 이 지상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상 교회의 성인들과 지상 교회의 성도들이 함께 통공을 이루고 있는 이 영적 현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통공의 요체는 거룩한 삶입니다. 천상의 성인들은 살아있을 때 거룩한 삶을 살아가신 분들이고, 지상의 신자들 즉 성도들은 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셨던 분들은 천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오늘 첫째 독서에서 들으신 요한 묵시록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며 살아갑니다. 모든 천사들이 하고 있는 대로,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기도하는 분들이 천상의 성인들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 천상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찬미하시는 천상의 성인들이, 아직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 역시 지상에서도 하느님의 뜻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전구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천상의 성인들의 전구가 필요한 이유는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자유가 완전하지 못하여 마귀가 조종하는 악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천상에서처럼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은 오늘 복음에 나와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 있는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모두 여덟 가지 또는 아홉 가지로 소개되는 이 길은 이 지상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살아갈 수 있는 진리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의 마음이 탐욕 없이 사랑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도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시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은 풍요로운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슬퍼하는 까닭은 이 세상에 사랑과 정의, 진리와 평화 같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모자라서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서 위로를 받을 것이므로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억눌리고 소외된 이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이들은 하느님께 온유하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백성이 될 수 있었고 이들이 세상 도처에 흩어져 믿음의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그들 안에서는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그분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온유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에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여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세상이 아직 불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의로움을 행할 기회는 넉넉하고 의로움을 반길 사람들은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위해 일으키신 그 모든 기적들도 의로운 일들이었습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로 자비를 베풀기도 하셨지만 예루살렘의 부인들의 자비로운 도움도 받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한 자비도 베푸셨지만 일용할 양식을 위한 자비도 받으셨습니다. 자비는 자비로 되돌아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탐욕이나 쾌락, 영예와 인기 같은 달콤하고 더러운 유혹이 마치 우상처럼 마음에 자리잡고 있으면 하느님을 가리지만, 이 유혹에서 벗어나면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며 이 유혹들에서 벗어나셨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분열이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기 때문에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닮은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로서 처신하셨습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도 행복합니다. 그 박해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불의한 박해를 견디어냄으로써 진리와 사랑, 정의와 평화라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세상에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시면서 중상과 모략, 무관심과 폭력의 박해를 당하셨지만, 그 박해를 견디어내심으로써 복음의 승리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거짓된 말로 사악한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도 행복합니다. 그 박해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참된 행복과 달리 탐욕과 쾌락, 영예와 인기 같은 현세적인 행복을 바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세상에 많습니다. 심지어 신자들조차도 그 신앙으로 현세적인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하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바라고자 하는 행복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신앙의 참과 거짓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닫는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고, 천상에 계신 모든 성인과 통공을 이루게 합니다.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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