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인간 욕망 길들이기

141 2017.10.23 09:23

본문

하느님 앞에서 부유함

인간 욕망 길들이기

 

로마 4,20-25; 루카 12,13-21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 October 23, 2017 · by 이기우 신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생존 본능으로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라나면서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교육이나 종교의 영향으로 욕망을 절제하는 수련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힘은 무한하게 커서 죄악으로 빠지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생존을 위해 무언가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에너지로서 인간의 욕망은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인류 문명을 일으켰지만, 그 문명조차도 욕망을 채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문명과 문명 사이의 갈등은 물론, 문명 안에서 일어나는 집단간의 전쟁이나 투쟁 그리고 개인과 개인간의 모든 갈등이 전부 욕망과 욕망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욕망의 포로입니다. 마귀는 욕망을 자극하고 충동질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포로로 삼기 때문에 욕망의 뒤편에는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현실을 무시하는 한 그 어떠한 욕망의 대책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문학의 주제들 가운데 대부분이 이에 관한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교육과 종교적 수련으로 길들여진 욕망을 욕구라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A. 머슬로우가 이에 관해 잘 다듬어진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채워져야 할 욕구는 생리 욕구입니다.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생리 욕구는 의식주를 채우려는 욕구에서 후손을 번식시키려는 성욕까지 포함됩니다. 그 다음은 안전하려는 욕구입니다.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위험이나 위협으로 인한 불안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안전 욕구의 다음에는 소속 욕구가 발동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등과 친교를 맺어서 마음 편한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멀리 한다 해도 누군가는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 줄 사람이 누구나에게 필요한 법입니다. 소속 욕구 다음에는 존경의 욕구가 생깁니다. 나를 편들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인생을 살고 싶은 존경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을 계획할 때 선한 가치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희생을 마다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욕구가 발전하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헌신하려는 욕구가 발동합니다. 이를 자아실현 욕구라고 합니다. 이 욕구가 무르익으면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넘어서서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려는 자아초월의 욕구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욕망은 재산에 대한 소유 욕망입니다. 끝이 없습니다. 자기파멸에 이르기까지 소유 욕망은 개인과 사회 전체를 지옥으로 만드는 속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소유 욕망에 사로잡힌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드시면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자아초월의 욕구를 그 대책으로 제시하십니다. 이는 일생동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자기의 온 힘을 다해서 다다를 수 있는 목표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통해서 그 본본기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은 욕망을 욕구로 길들이고 욕구를 기본적인 단계에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정신적 수련의 과정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이런 수준의 신앙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도록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욕구를 인정해 주고 또 채워질 수 있도록 도우면서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에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내 자신이 본보기를 보여주는 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오로가 자만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욕망의 정체를 바로 보고, 그 욕망을 욕구로 길들이면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오늘 말씀의 초점입니다.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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