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130 2017.10.02 08:53

본문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by 이기우 신부 · Oct. 1, 2017(주일)

 

| 이사 66,10-14ㄷ; 1코린 7,25-35; 마태 18,1-5

 

다시 새로운 달을 맞이합니다. 시월은 가을이 무르익는 단풍의 계절이고 푸르른 하늘이 한껏 높아지는 달이며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전교성월입니다. 그 첫 날인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성녀를 부르는 이름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되 더욱 겸손하기 섬기기 위하여 아기 예수님을 섬기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둘째는 동정 학자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하는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전서를 읽다가 그 몸에서 제일 필요하고 제일 귀한 것이 심장이며 그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사랑이 꺼질 지경에 이른다면, 사도들은 더는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고,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이 신비를 깨달았기에 그는 동정 학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근본적인 신비, 즉 복음의 근본적 현실을 현대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작은 길’은 ‘어린이의 거룩한 길’입니다. 그 안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세계적 진리가 재확인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이’라는 것입니다. 성녀 안에서 보아야 할 것은 참으로 작은 일상 사건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크나큰 신비의 현실로 바꾸어 갈 정도록 불태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그 자체이다.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 일상생활에서 대신덕(對神德)을 우선으로 하는 것,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복음 선교의 사명,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에 대한 형제적 이해와 배려, 천국에 관한 역동적 사고방식, 형제애를 가르치는 방법, 성모 마리아에 관한 신학 등에 있어서 데레사 성녀는 탁월한 깨우침을 현대인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선교의 수호자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봉쇄 수도원의 담장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었지만,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려고 세상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는 선교사들의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극기 한 번 하는 것도 선교를 위하여, 희생 한 번 하는 것도 선교를 위하여, 성체 조배의 지향도 선교를 위해 바쳤습니다. 

 

24살의 젊은 나이로 선종하기 전에 데레사 성녀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 시기에 그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는 삶의 특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함께 살던 수녀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데레사의 삶은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는, 그저 매우 친절했고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짧고 숨겨진 삶이 자서전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은 강인한 의지,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 속에 깃든 예리한 판단력과 섬세한 감수성, 지독한 병고 중에도 예외 없이 계속해 온 일상생활, 혹독한 영적 메마름을 겪으면서도 확고한 평화를 간직했으며, 고통 중에 더욱 타오르는 헌신적인 봉사로 일관한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소화(小花)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작고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이 지니는 가치를 알고 숨어 살았던 소화 데레사의 삶은 우리에게도 작지 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지만 온 세상 구석 구석에 다 퍼져있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기도와 희생으로써 선교사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그 삶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신비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웅변입니다. 

 

이제 소화 데레사 성녀를 기리기 위해 교회가 전례 안에 배치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18장의 서두로서 공동체 설교의 시작 부분입니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곤 하였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오늘 들으신 복음서 본문 바로 앞에, 성전 세를 바치는 문제가 나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스타테르 한 닢을 성전 세로 바치시자 베드로를 제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서열로 삼으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성전 세를 일정한 수입이 없었던 예수님께서도 그리고 제자들도 바쳐야 하느냐 또는 바치고 있느냐 하는 물음 앞에서, 그래서 성전을 관장하고 있는 사두가이파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는, 현실적으로 민감한 상황 속에서도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제자들의 서열에만 관심을 두고 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관심사에는 관심이 없으셨고 오히려 이 질문을 계기로 삼아 제자들 안에서 으뜸가는 자격 조건은 물론이요 모든 믿는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시된 기준이 어린이입니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살아가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어린이처럼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애써야 할 뿐 아니라 그 작은 이들을 힘써 찾으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나온 것이 이른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부르는 명제입니다. 선교 또는 복음화란 하느님께서 몸소 이룩하시는 구원 과업 앞에서 스스로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면서 작은 이들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아들인 형제들이 서로 섬기는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무슨 거창한 선교 전략이라는 것이 자리잡을 여지도 없습니다. 복음적 매력의 발산이야말로 선교의 핵심인 것이고, 데레사 성녀는 봉쇄 수도원 안에서도 이 영성을 살아간 증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복음적 매력의 발산으로 이루어진 선교적 교회를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혈통으로 이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모인 예루살렘이 편협한 선민의식의 상징이었다면, 새 예루살렘은 하느님 안에 모여든 이들이 함께 기뻐하고 평화를 누리는 영적인 도성입니다. 짧은 수도생활을 살아갔던 데레사 성녀이지만 그는 세상 구석 구석을 누비며 선교하는 이들과 영적으로 교류함으로써  새 예루살렘을 대망하며 살아간 작은 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소아시아 일대를 다니다가 그리스 지방에까지 복음을 전한 선교사 바오로는 풍부한 물산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그 결과로 윤리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던 코린토 사람들에게 복음이 가져다주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에 눈을 돌리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기혼자이건 미혼자이건 자신의 처지에서 하느님께 부르심 받은 대로 살아가되 품위있고 충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인간의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처지 속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담겨 있다는 뜻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선교사 바오로가 권고하는 바,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영적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소화 데레사의 모범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전교의 달을 시작하면서 선교의 수호자로 소화 데레사 성녀를 우리 교회가 기리는 뜻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예수님을 섬기면서 일상의 작은 일을 함에 있어서도 사랑을 위하여 봉헌함으로써 복음적 매력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일생을 불사르는 선교사들은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다 바칩니다. 신앙 그 자체보다도 선교대상자들의 공동선을 먼저 해결하기 위하여 애써야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에게는 교회 일반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시작은 자발적으로 복음을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해도, 박해를 견디어내고 성장할 수 있기 까지는 수많은 선교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선교 본국 교회 신자들의 열렬한 관심과 후원 속에서 우리 교회를 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교회도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거듭 나려고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있고 그들을 기도와 후원으로 돕고 있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도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의 관심과 물심양면의 후원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